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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아트팩토리 청주, 새로운 물길을 만들다

2012-01-31


낡은 교회건물이 도서관으로, 헐리기 직전의 뒷골목이 아티스트의 문화곳간으로, 근대산업의 공장건물이 문화산업과 문화콘텐츠의 요람으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는 더는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지구촌이 도심재생은 물론이고 경제 활성화 전략의 일환으로 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도시발전은 물론이고 국가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사례가 수없이 많아졌다. 시대정신이자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된 것이다.

글 | 변광섭 컬처플래너·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기획홍보부장

이처럼 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가 시대의 화두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오랜 옛날, 문자도 활자도 없던 선사시대 때부터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보다 나은 삶을 개척하며 창조적 진화라는 역사의 궤적을 밟아왔다. 득롱망촉,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그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탐하는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 낸 것이 정보혁명과 산업혁명이 아닐까. 허나, 이들 혁명은 우리에게 언제나 가치 있고 유용한 결과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획일적이고 시테크의 논리에 매몰되면서 개성미가 사라지고 인간의 감수성과 대자연의 서정마저도 앗아가고 말았다. 국가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세계가 보편적인 가치와 질서로 재편되는 것이 최고인 줄 알았지만 그 뒤안길은 막막하고 누추하며 불안할 뿐이었다.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는 법. 근대화와 산업화의 파편들이 하나 둘 버려지고 방치되면서 쓰레기를 양산하고 골칫덩어리를 만들었으며 자칫 지구촌의 대재앙으로까지 확전될 조짐이다. 인간들은 부메랑이 되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있는 이것들 때문에 더 이상 피를 흘릴 수 없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지혜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은 1998년부터 ‘Creative UK’이라는 창조산업을, 미국은 2000년부터 ‘Creative America’ 정책을, 중국도 2005년부터 ‘中國文化創意産業’이라는 정책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창조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은 셰필드(Sheffield)시를 비롯한 몇몇 도시의 아트팩토리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항구도시 셰필드는 인구 51만 명으로 산업혁명 이후 철강 및 군수산업이 발달한 영국의 대표적인 중공업 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에 영국의 극심한 경제침체로 주력산업인 철강산업이 쇠퇴기를 맞자 도시 전체가 침체에 빠지고 일자리가 줄며 실업자가 급증하였다. 셰필드는 고심 끝에 1986년에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셰필드시위원회를 만들고 10개년에 걸친 문화산업지구 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버려진 도심 공장지대에 콘텐츠 및 디자인 업체, 영화사 등 다양한 문화산업을 유치하면서 경제활동 인구의 10%가 문화산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관광산업으로 확장되면서 문화도시 문화복지를 실천할 수 있었다. 문화산업과 아트팩토리라는 정책에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이 총성 없는 전쟁을 시작했으니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꺼지지 않는 용광로이며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원이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원할 것이다.

현대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21세기 최후 승부처는 문화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창의의 자양분인 문화를 비옥하게 하고 창의의 홀씨인 예술을 널리 퍼뜨려서 문화복지를 실천하고 문화브랜드를 만들며 창조도시로 발전시키는 것이 시대정신이니 그 길을 외면하는 자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문화산업이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첨단콘텐츠와 접목시키며 다양한 장르와 통섭 및 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고 영화 음반 게임 방송 애니메이션 출판 광고 디자인 공연 공예 미술 등으로 새롭게 발전시키며 관광산업에서부터 교육, 복지, 지역경제 활성화, 도시마케팅, 공간재생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라 할 것이다.

문화산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트팩토리다. 아트(Art)와 팩토리(Factory)의 합성어인 아트팩토리는 말 그대로 공장건물에서 펼쳐지는 문화예술을 일컫는다. 80년대 이후 산업화의 유산이었던 공장들이 이전되거나 업종 전환되면서 폐쇄되고 방치됐던 애물단지를 문화예술의 아지트로 변신하면서 폐허가 된 도시에 활력을 되찾아 주고 문화예술을 살찌워주며 문화도시 문화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 20만의 영국 북서부 게이츠헤드(Gateshead)는 중화학공업과 탄광도시였지만 공장들이 이전하면서 폐허로 전락하고 실업자가 급증하자 시정부가 문화산업으로 도시재생을 시작하였다. 옛 제분소를 활용해 현대미술관을 개관하고 사람과 자전거만 다니는 다리인 밀레니엄 브리지를 개장했으며 영국 최고의 야외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연간 2천만 명이 방문하고 8조 원에 달하는 관광수익을 얻어내고 있다. 또 영국에서 가장 살기 나쁜 곳 1위라는 오명을 얻은 런던 북동부의 해크니(Hackney)는 낙후지역에 공공도서관을 짓거나 광장 공원을 새롭게 꾸미는 등 2002년부터 공공 공간 100대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재생에 성공했으며 런던의 복합 문화공간 ‘더 와핑 프로젝트’는 1890년대 지은 공장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채 갤러리 아트숍 등을 유치해 문화관광 공간으로 변신했다.

인구 9만의 소도시인 독일 에슬링겐(Esslingen)은 옛 철물공장을 대중문화 레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도시를 만들었고, 독일 뒤스부르크(Duisburg)도 유럽 최대 철강회사였던 ‘티센’의 옛 제철소 건물을 문화예술과 컨벤션센터, 그리고 디자인 정책을 통해 새롭게 변모시켰다. 하늘을 찌를 듯한 초고층 빌딩 숲에도 아트팩토리는 매력 만점이다. 미국 뉴욕의 첼시마켓은 버려진 과자공장 28개를 터서 갤러리와 음식점으로 만들었으며 정육점의 거리였던 미드패킹 역시 오랫동안 닫혀 있는 빗장을 열고 할리우드 스타들의 매장과 명품숍, 레스토랑 등이 붉을 밝히면서 “낡은 것도 멋”이라는 아날로그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역을 개축하여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소장한 오르세 미술관은 세계 미술인들의 로망이고 프랑스를 문화의 도시로 만드는데 견인하고 있다. 이처럼 아트팩토리는 겉보다 속이 아름답고,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빛바랜 공장에 21세기 감성을 입히는 곳이다.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9월 21일부터 40일간 펼쳐진 이번 행사는 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 65개국 3천 명의 작가 6천여 점을 전시해 단군 이래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전시, 공예분야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로 기록되었다. 전시·페어·워크숍·체험·공연이벤트·청주청원 네트워크전·시민참여프로젝트 등을 통해 공예는 물론이고 우리의 삶과 미래에 대한 꿈을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거칠고 야성적인 건물인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피카소 등 세계 미술거장들의 전시장으로 변신했으니 흥미롭다 못해 흥분과 감동의 곳간이 아닐까.

정부가 이곳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새로운 건물, 새로운 디자인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낡고 오래된, 황량하게 방치된 건물에 인간의 온기를 넣는 프로젝트, 즉 시대의 담론과 새로운 화두를 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인간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공예를 담는 그릇도, 시대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삶을 노래하는 곳간도, 그리하여 그 지역과 국가와 시대를 포장하고 기록하는 것도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건축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인격을 만드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지난 1999년부터 격년제로 개최해 온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해를 거듭할수록 내실 있는 전시와 알찬 부대행사로 국제사회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17개국이 참여하던 첫해와는 달해 올해는 65개국에서 참여하였으며 초대국가로 참여하기 위해 각국의 불꽃 튀는 경쟁이 이루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국외작가의 발길을 보면 공예비엔날레의 저력과 가치를 알 수 있다.

게다가 거칠고 야성적인 건물인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세계 미술거장들의 전시장으로 변신했으니 흥미롭다 못해 흥분과 감동의 곳간이 아닐까. 피카소(Pablo Picasso)의 카펫, 괴짜 초현실주의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ì)의 의자, 디자인 거장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벽지, 사진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식기세트, 북유럽 건축디자인의 아버지 알바 알토(Hugo Alvar Henrik Aalto)의 의자…. ‘유용지물(有用之物)’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순수 공예작가 외에도 디자인, 건축,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함께 소개돼 더욱 돋보이고 주목받는 것이다. 초대국가 핀란드관도 흥미로웠다. 160명의 작가가 860점을 전시했는데 전통과 현대, 생태와 교육, 삶과 문화를 테마별로 연출했다. 우리에겐 예술로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인 것들…. 모두 문화의 힘을 엿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것은 전시공간이다. 건물의 모습에 덧칠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검박(儉朴)하게 준비했지만 그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국외의 어느 큐레이터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썼기 때문에 의도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미술기획자는 “이 건물이 뉴욕 중심에 있었다면 21세기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피를 토하기도 했다.

쇠락한 건물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데 그치지 않았다. 공예와 공예 밖의 다양한 문화양식들이 통섭 및 융합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건축, 디자인, 패션, 미술 등의 시각에서 새로운 공예정신을 찾고자 했다. 눈으로만 보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지고 소장하며 일상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규모 페어관도 운영했다. 릴레이명사특강, 가을의 노래 시인의 노래, 청주청원 박물관 미술관 네트워크전 등 비엔날레가 열리는 40일간 청주는 거대한 공예의 숲이요 문화의 바다였다. 그리하여 청주가 아트팩토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맑고 향기로운 청주정신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글쓴이 변광섭은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전공했다.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한국공예관 총괄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문화가 예뻐졌어요」, 「글로벌문화담론_크라토피아」, 「우리는 왜 문화도시를 꿈꾸는가」, 「미술관에서 박물관까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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