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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측정 불가한 1퍼센트의 가치

2012-03-21


이른바 “1퍼센트 법”은「인간의 조건」이란 소설로 유명한 앙드레 말로가 프랑스 문화부장관이었던 1950년대 처음 만들어졌다. 전후 맥락을 살펴볼 때 이 제도의 1차적 목표는 2차 대전의 영향으로 길바닥에 나앉은 예술가들의 생계 지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후 모습을 달리해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 시험되었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더 성숙한 문화행정으로 성숙해 갔다. 제도에 따른 문화적, 경제적 파급효과는 전 세계적으로 따지자면 측정 불가할 만큼 거대했다.

기획, 글 | 이정헌 기자
기사제공 | 월간 퍼블릭아트

현재 공공미술과 관련해, 국가 차원에서 구속력을 갖는 법제도를 마련한 곳은 오직 한국뿐이다.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문예 진흥법 제9조, 건축물미술작품제도의 기능과 가능성은 공공미술의 새로운 대안 마련의 차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문제는 운영이다. 본지는 기금으로 운영될 한국 공공미술 사업에 귀감이 될 만한 해외의 유사 사례를 찾아보고, 이에 비추어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을 정리했다.

기금에 의해 운영되는 해외 사례들
건축물미술작품제도는 도시문화 환경개선과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 근린생활시설 등의 건축물을 신축 또는 증축할 때 건축비용의 1퍼센트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한 제도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개정안에는 기존 1퍼센트보다 30퍼센트 할인된 0.7퍼센트를 문예기금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추가됐다. 문예기금에 의해 추진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개별 건축물에 한정된 ‘장식’의 차원의 조형물을 넘어, 장소 자체를 창조하고, 장소와 장소, 장소와 주민을 연결하는 공공환경의 질을 높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 1퍼센트 법이 여전히 유효한 도시는 많지만, 현재 한 나라 전체가 그러한 법령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기금이 국가 차원이든, 행정구역의 기금과 기업의 투자, 또는 개인 투자이든 기금 관리 주체의 투명한 운용과 작가 및 기획자에게 기본이고, 기금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이들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옳다. 이에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를 살펴봤다.

공공미술과 펀드레이징?
이제는 공공미술의 대명사 격이 된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 2004년에 완공된 이곳은 원래 일리노이 센트럴 철도부지와 주차장이었던 9만9000㎡를 개발해 탄생했다. 밀레니엄 파크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점은, 유명 건축가와 작가들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설립의 배경,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카고시는 밀레니엄 파크 설립을 위해 민관 파트너십을 추진해‘Lakefront Millennium Project as a Public-Private Partnership’을 설립하고 펀드레이저(공익을 위해 기금을 모으는 이)를 영입, 시카고시 자체의 기금 이외의 자본으로 끌어 모았다. 10억 원 이상의 개인, 기업, 재단의 지원금과 30억에서 150억 원 이상을 지원한 10명의 기부자들의 후원, 그리고 시 자체의 기금까지 합쳐 총 5,300백 억 원을 들였다. 돈만 들인다고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큰돈을 들인 시카고 시는 도시공간기획 전문가를 영입했다. ‘도시 큐레이터’ 즉 공공미술 전문 큐레이터는 1년에 2~3작품을 시민설명부터 작품설명까지 담당해 도시와 시민, 작품 간의 매개형 큐레이터 역할을 한다. 프랭크 게리, 구스타프슨, 아니쉬 카푸어, 하우메 플랜사의 유명한 ‘작품’들은 이렇게 탄생됐다.(밀레니엄 파크의 설치작품에 대한 설명은 본지 2010년 9월호 참고)

2004년에 설립된 밀레니엄 파크는 한 컨설팅회사에서 향후 10년간 경제적 효과를 예측한 결과, 시카고에 가져다준 경제적 영향은 한화로 추산하면 14조원, 관광객 유발로 예상되는 경제효과는 19조원에서 26조원으로 나왔다. 주차장이었던 공간이 창출했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다. 이 예상을 반증하듯 시카고는 뉴욕을 제치고 미국 내 인기방문도시 1위에 뽑혔다.

프로젝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기금제
네덜란드의 유트레히트시(Utrecht)는 2001년, 신거주지인 레이체 레인을 만들어가면서 공공미술과 건축, 조경 등 지역성을 살린 커뮤니티 꾸리기에 힘썼다. 유트레히트시 토지개발국과 문화국은 SKOR(Foundation for Art and Public Space)와 긴밀히 협력하며 ‘레이체 레인을 넘어(Beyond Leidsche Rijn)’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했다. 2001년부터 10여년간 지속된 이 작업은 앞으로 5년여를 남겨두고 있으며, 총예산은 약 15만유로(100억 원)로 유트레히트시 예산 절반, 중앙정부 예산와 SKOR의 기금 및 기업협찬금 절반으로 충당하고 있다. 레이체 레인에서 운영 중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지역민과 작가에게 창의적 개입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비어있는 부지를 예술가들에게 사용가능하게 하여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는 방식을 취해 공공공간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공원 설립이나 조형물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민과 작가의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한 유연한 프로젝트 운영이 돋보였다.

공공미술과 장소마케팅의 진수
런던 트리팔가 광장의 남쪽 좌대는 ‘네 번째 좌대(Fourth Plinth)’로 불린다. 네 번째 좌대는, 런던시가 주관 하에 150여 년간 빈자리로 있던 좌대를 작가 마크 윌린저, 빌 우드로우, 레이첼 화이트리드에게 빌려주면서 시작됐다. 예상보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영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를 선정, 후원하여 이 ‘네 번째 좌대’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 이는 물론 영국예술위원회와 런던시의 문예기금으로 운영되며, 여섯 개의 후보작을 전시한 후, 일반인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최종 작품을 선보인다. 현재까지 마크 퀸, 토마스 쉬테, 안소니 곰리, 잉카 쇼니바레 등 쟁쟁한 작가들이 전시하여 큰 호응을 얻었고, 올해는 미카엘 엘름그린과 인가르 드래그세트의 가, 2013년에는 카타리나 프리치의 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트리팔가라는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핵심요소가 되었다.

쇠퇴지역 살리기는 기본
1990년, 호주 멜버른 시는 수변공간이었던 도크 랜드(Dock Land)를 재개발하는 사업을 벌였다. 항만시설이 밀집해 있는 200만㎡ 면적을 대상으로 2020년까지 2만 명의 저민과 업무지역의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역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도크랜드 재개발은 빅토리아 도시개발청과 멜버른시의 협력을 주요 원동력으로, 여러 민간섹터가 개발에 동참하고 있다. 공공미술의 경우, 민간섹터에서 개발규모의 1퍼센트를 예술작품을 위한 기금을 낸다. 이 자금으로 도크 랜드 곳곳에 환경조형물 35점이 설치되었으며, 향후 50여개의 작품이 추가로 설치될 전망이다. 빅토리아 항구와 야라브릿지(Yarra's Bridge)를 연결하는 보행교를 작가와 엔지니어가 협업해 디자인 하는 등,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도시 인프라를 조성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시 문화 기반 다진 기금제
시애틀 시는 1973년, 공공미술을 위해 1퍼센트 법을 처음 채택한 도시다. 기금으로 운영된 현재 350여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공원, 도서관, 도로, 다리 등 공공공간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시애틀은 ‘Municipal Art Plan’을 수립, 체계적으로 공공미술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1퍼센트 법의 기금뿐만 아니라 시의 예술기금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교통, 조경, 도시개발 담당 부서들끼리의 전략적 공공미술 협업이 자랑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역사만큼이나 문화관광차원으로 공공미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돋보인다. 시애틀의 ‘공공미술 지도’는 여러 지역에 걸쳐 각 작품의 위치와 작품명이 표기되어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 놓았다. 최근에 조성된 올림픽 조각공원도 공공미술을 위해 버려진 도시 공간을 도시 인프라계획과 협력하여 공공공간을 조성한 예이다.

벤치마킹보다 중요한 제도 인식의 문제
이밖에도 프랑스의 라데팡스(La Defense)와 도쿄의 마루노우치, 미국의 포틀랜드, 영국예술위원회의 주관으로 영국 곳곳에서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들, 등 해외 선진 사례는 많다. 앞서 설명했듯이 행정구역상, 혹은 특별법에 의한 제도가 아니라,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는 현재 한국밖에 없다. 공공미술의 역사적 토양은 다르지만, 보다 나은 프로젝트를 선보이기에는 더 없이 좋은 제도적 환경을 지닌 셈일까, 혹은 그 반대일까.

기금제 또한 기존 1퍼센트 법처럼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라는 인식이 먼저 든다. 앞서 살펴본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시 자체나 행정구역 자체가 공공미술 정책을 강화하면서도 민간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퍼센트 법’은 한국처럼 중앙 정부가 제시하는 퍼센트는 없지만, 지역별로 자체 운영되고 있다. 한 예로 첼시의 경우,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지 않은 건축주에게 해당 지역 주변에 설치된 다른 작품을 지원이란 명목으로 5만~10만 파운드의 기부를 요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공미술과 기금 제도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다. 혁신도시사업과 관련해 기금 출연이 더뎌지고 있는 실정이 그 반증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지난해 12월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 의해 출연된 기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관리 운영한다. 앞서 설명한 해외 사례에서 한국이 벤치마킹할 부분을 우선적으로 짚고 간다는 게 예술위 측의 계획이다. 예술위가 지난해 세운 ‘공공미술사업 추진계획’에는 위에 사례로 든 도시의 장점들이 한데 녹아 있다. ‘공공미술 사업계획(2011. 1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미술 TF팀)’에 나온 ‘2012년 세부사업별 기금 산출내역’을 보면, “시민들이 공공미술 작품을 찾아볼 수 있도록 지역별 가이드 맵을 순차적으로 제작 및 배포하는 ‘공공미술작품 가이드맵’” 사업과, 공공미술전문 기획자, 공공미술 매니저 리서치 및 워크숍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또 가장 ‘모범적인’ 행정으로 손꼽히는 영국예술위원회의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온라인 아카이브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사업들을 구축 중이다.

세부사업 계획 중에는 무엇보다 제도와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공공미술 홍보를 위한 공중파 방송과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주목된다. 공공미술과 제도 인식 개선을 도모하는 차원의 교육프로그램은 지자체 및 유관 기관과의 공공미술협의체 구성,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질 때, 그 실질적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물론 결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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