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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불안한 풍경

2012-09-03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려는 아르코미술관의 2012 주제기획전은 플레이그라운드이다. 어린이들에게는 놀이의 공간, 집단이나 개인에게는 활동의 장소인 놀이터는 일차적으로 자유롭게 뛰노는 곳 혹은 즐거운 장소로 인식된다. 그러나 힘에 의한 나름의 질서가 존재하고,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장소 그래서 심지어는 공포스러운 곳으로 인식되기 까지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거나 외면하는 우리 주변의 불안을 동시대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공성훈, 김기철, 김상돈, 노충현, 오인환, 육태진, 임선이, 정주하, 최수앙 등9명의 작가의 회화, 사진, 설치, 영상작품 총 31점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12년 8월 17일부터 9월 28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에디터 | 김윤 객원기자 (cosmosstar00@naver.com)

상이한 신념과 입장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지금의 한국사회. 이번 전시는 우리 현실에 대한 의문과 의지를 품은 예술가들의 사유와 성찰을 담아낸다. 작품들은 시각적인 충격으로 불안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대상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반성하게 만든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척 하지만 이면에 존재하는 불편함과 불안한 인식을 담은 작품들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안한 풍경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너도나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화가 잘 통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누구의 잘못일까 고민하기도 해봤다. 작가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잘 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화자는 말을 하면서 귀를 막고 있다. 청자는 들으면서 먼산을 바라본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소통은 서로의 교감을 이루기보다는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만 하고 있다. 소통을 시도하면 할수록 모호해지고 불안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광동토템은 김상돈작가의 몸보신용 3종 세트 연작 중 하나인 삼계탕이다. 불광동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천원에 구입했다는 의자에 삼계탕에 들어가는 마늘 등의 각종 재료를 달았다. 위에 있는 꽃은 닭의 벼슬 모양이고 가운데는 닭의 깃털이 있다. 키치적인 이 작품은 김상돈 작가가 서민들을 위해 한 그릇 건네는 재미있는 삼계탕 같다. 불광동토템(의자)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면 영상물이 나온다. 새소리가 나고 싱그러운 숲이 보인다. 중간중간 몽타주처럼 미군기지의 흔적과 숫자가 적힌 표식이 지나간다.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는 동두천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죽어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전쟁 때문에 동두천에 거대한 미군기지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상당한 달러가 거래되는 그곳을 정부에서 묵인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젊었던 여성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생계를 위해서였지만 떳떳하지 못한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서 죽어갔고,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남겨져 있다. 심지어는 그조차도 못하고 흔적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원색적이고 다소 기괴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작품 들은 전시장 전체를 불안한 분위기로 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공성훈작가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관객들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을 포기하고, 다소 강한 어투로 발언을 하고 있다. 더욱 예쁜 것을 찾는 우리의 눈에 현실의 차가움과 외로움에 대한 주장을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어디선가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3등분된 화면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작가 오인환은 만세자세를 취하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팔이 아프고 자연스레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다. 그러다 결국은 카메라를 떨어뜨리면서 작업은 끝난다. 국가를 대표하는 아이콘중에 하나인 태극기 앞에서 독립을 외치는 투사처럼 만세를 외치다가 결국에는 지쳐서 쓰러진다. 제도에 대한 의문을 느끼는 작가는 남들과 다르면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동성애)인 작가가 현실에서 느끼는 차별과 차가운 시선을 작품에 표현한다.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냉소적인 표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검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대부분에 사람들은 야한비디오가 나올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흔들리는 태극기가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에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대상을 바라보고 차별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공간의 숨은 폭력성을 담았다는 노충현 작가의 작품은 일상적인 공간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 하였다. 초점이 흐리고 모호한 색의 조화는 매일 생활하는 공간도 채도가 낮아지고 시야를 조금만 바꾸면 무서운 곳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속에는 공포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분위기에 고급스런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예쁜 그림이 걸려있는 전시장을 미술관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플레이그라운드는 미술과는 다소 거리가 멀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전시의 실제 주제는 불안이다. 미술은 혹은 예술은 현실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이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과 마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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