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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자연, 그리고 건축+예술+과학의 축제

2013-08-29


예술 이전에 삶이 있다면, 그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것이 바로 자연이다. 이러한 자연과 예술이 함께 호흡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Nature+Media Annuale 2013)’이 제주도 구좌읍 김녕리 김녕마을의 무대로 펼쳐진다. 4팀의 젊은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 그룹이 직접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자연과 예술이 만남을 주제로 한다. 이곳에서 제주도의 바람은 음악이 되거나 잊을 수 없는 잔상으로, 제주 지역의 슬픈 전설은 푸른 미세조류로 표현된다. 9월 14일 김녕마을에서의 정식 오픈을 앞두고 아르코미술관 갤러리 필룩스에서 이들의 작품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http://naturemediaannuale.org/)

네임리스 건축과 랜덤웍스, 곽성조가 함께 보여준 ‘풍루 風樓, Naturally Forced, Essentially Formed (가제)’는 바람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작업이다. 바람은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줬지만, 예술 그 자체로서 인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녕마을에서도 특히 바람이 잘 든다는 올레길 20코스 서포구에 위치될 이 작품은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형태가 변형되도록 만들어졌다. 제주에서의 바람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라는 공간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바람을 통해 많은 문화가 생성되기도 했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을 경험하고 가까이에서 인식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제주도를 느끼는 것이자, 삶과 예술, 그리고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임을 말해준다.

양수인과 에브리웨어, 김호영의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는 하루 동안의 바람 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5분 분량으로 압축해 음악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일상생활에서 바람은 다양한 삶의 소리들을 들려주지만, 정작 그 실체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바람의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다시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바람을 하나의 감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와이즈건축과 박진우, 양현경이 함께한 ‘탕’은 하천이 발달하지 않은 제주도의 지형적 특성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업이다.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는 담수를 식수나 생활 용수로 사용했다. 어떤 해안가에서 이러한 단물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현상을 용천수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용천수가 발견되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을 생성했다고 한다. 김녕마을의 청굴물도 바로 이러한 용천수로 그 주변에는 물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놓은 돌담이 그대로 담아 있었다. ‘탕’은 바로 이곳에서 작업을 시작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물터를 재현해내고자 했다. 단물과 해수를 물밑에 설치된 반투과성 분리막으로 분리된 물탱크에 담아, 삼투압으로 물을 아래에서 위로 흐르게 하고, 위로 올려진 물이 돌담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 팀의 아이디어는 같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 에 있어서 철저한 분업(?)을 이뤄냈다. 양현경 박사가 위치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선보이고 박진우 작가가 그 위치에너지의 낙수차를 이용한 물방울 샹들리에를 돌담에 설치했고, 와이즈 건축은 돌들을 돔처럼 쌓아 올린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지역에 가게 되든 민속신앙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하태석, 권병준, 김대희가 찾아낸 제주도의 민속신앙은 자못 독특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생물발광 미세조류를 통해 스토리와 공간,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아우르는 시도를 한 것이 눈에 띈다. 사랑의 영원함을 비는 사당을 재현한 파빌리온과 그 파빌리온을 채우는 생물발광 미세조류 캡슐, 그것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해나가는 주민들의 조합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조명인 동시에 김녕마을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기념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은 아마 예술의 역사와 같다고 할 만큼이나 길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건축, 과학, 예술이 함께 반응하고 하나의 결과물을 낸다는 시도는 드물었다.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Nature+Media Annuale 2013)’는 이 네 가지 요소가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융합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이 전시가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예술가와 과학 기술이 만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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