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김영갑, 제주를 향한 진심

2013-09-25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 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 제주도 푸른밤-


<제주도 푸른밤> 의 노랫말처럼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제주도에 정착해 제주를 마음 깊이 사랑한 이가 있었다. 바로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아낸 사진작가, 김영갑이다.

글│구선아 객원기자( dewriting@naver.com)
자료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그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제주 곳곳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또한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은 제주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느라,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면서도 제주를 담아내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김영갑이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었던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다.

김영갑이 갤러리를 만들고자 결심했던 것은 창고의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을 위해서였다.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하나씩 바꿔 나가면서 완성한 것이 현재의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다. 그러나 갤러리의 초석을 다질 무렵, 그는 언제부턴가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그에게 루게릭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던 김영갑은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갤러리 만들기에 더욱 열중했다. 이렇게 하여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 2002년 여름에 문을 열게 되었다.

삶에 지치고 여유 없는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서 와서 느끼라고.
이제까지의 모든 삿된 욕망과 껍데기뿐인 허울은 벗어던지라고. 두 눈 크게 뜨지 않으면 놓쳐버릴 삽시간의 환상에 빠져보라고 손짓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의 진정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입니다. 그것이면 만족합니다.
- 김영갑 -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는 두 개의 전시실 두모악관과 하날오름관이 있다. 전시실 안에서는 마치 눈 소리, 빗소리, 혹은 바람 소리 같은 잔잔한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오고 김영갑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는 미처 몰랐던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도록 벤치가 마련되어 있고, 작품 아래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음 직한 돌멩이들이 놓여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전시실 사이에 있는 영상실 안에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김영갑의 당시 모습과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젊은 시절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유품전시실에는 손때가 묻은 잡지와 사진 관련 책, 인문학 책들이 빼곡히 꽂힌 책장과 금방 앉았다 일어난 듯 보이는 책상, 그리고 수천의 제주도의 모습을 담았던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다.

힘든 투병생활 중에 손수 일궈낸 야외 정원은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의 휴식과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정원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두모악을 찾을 만큼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이 특히 눈길을 끈다.

김영갑 작가는 진심을 담아 제주도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이 진심을 다해 두모악을 만들었다. 150여 개가 넘는 갤러리와 전시관이 있는 제주도에서 두모악이 점차 입소문을 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심 때문이 아닐까.

[김영갑 작가 프로필]
1957 – 2005 충남 부여 출생
1974 홍산중학교 졸업
1977 한양공업고등학교 졸업
1982 제주도에서 사진 작업 시작
1985 제주도에 정착
2002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개관

[김영갑 작가 사진집]
1995 최남단 마라도
1997 숲속의 사랑
1997 삽시간에 붙잡힌 한라산의 황홀
2001 마음을 열어주는 은은한 황홀
2005 내가 본 이어도 1 - 용눈이 오름, 바람에 실려 보낸 이야기들
2005 내가 본 이어도 2-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 환상곡
2005 내가 본 이어도 3-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2006 1957-2005 김영갑
2010 마라도

[김영갑 작가 에세이집]
1996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2004 그 섬에 내가 있었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