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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봄바람처럼 산들산들 살자꾸나

2019-04-23

햇살 따뜻하고 바람 살랑살랑 부는 날 잔디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연둣빛 나뭇잎 사이로 하늘과 구름이 비친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날이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더 소중하다. 느림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안다는 건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갖게 해준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풍부한 감성, 외부 자극에 위협받지 않는 느긋함, 스스로를 살피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산들산들〉 표지 이미지

 

 

그림을 그리는 한 엄마는 이런 귀한 가치, 느림의 즐거움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빠르게 흘러가는 오늘에 휩쓸리지 않고 천천히, 여유롭게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을 만들었다. 

 

 

〈산들산들〉 내지 이미지

 

 

〈산들산들〉은 시골을 배경으로 소박하지만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담은 신지현 작가의 그림책이다. ‘미술 하는 엄마의 재미있는 집’을 의미하는 재미당을 통해 선보인 이 책의 주인공은 한적한 시골 풍경, 한옥의 멋, 자연의 멋스러움 속에서 여유와 우리 것의 매력을 만끽하는 꼬마 소녀 단풍이다. 까만 단발머리에 한복을 입은 귀여운 소녀는 TV도 없고 장난감도 없는 시골집에서 재미있고 신나게 놀이를 한다. 호기심 어린 개구진 표정으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신지현 작가의 작업실 재미당과 〈산들산들〉, 그리고 꼬마 주인공 단풍이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산들산들〉 작가 신지현입니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아시아프에도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졸업 후에는 아동미술·교육 분야에서 일을 했고요, 지금은 24개월 아이를 둔 엄마로, 작가이자 재미당의 창작가로 살아가고 있어요. 

 

재미당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재미당은 전통과 느림의 미학을 바탕으로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미술교육’을 콘셉트로 한 캐릭터 및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곳이에요. 재미당의 주인공인 단풍이와 소풍이, 그리고 한복과 한옥, 자연을 기초로 재미있고 느리지만 확실한 영감을 주는 그런 작품들과 미술교육 콘텐츠를 만들고자 해요. 창작한 작품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품들도 제작할 예정이고요.

 

재미당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아이들은 ‘재미’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재미가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재미당을 만들게 됐어요. 
 
2017년 아트컬래버 공모전에 당선돼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틈틈이 그려왔던 그림들을 중심으로 ‘산들산들’이라는 개인전을 가졌었어요. 당시에는 재미당이라는 이름이나 캐릭터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었는데, 이후 지속적인 고민과 작업을 통해 재미당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해졌고, 〈산들산들〉이라는 독립출판으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작업실 모습.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재미당.

 

 

실제 경험이 많이 반영됐을 것 같아요.
집에서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와 재미있게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마땅한 놀거리가 없어요. 일방향적 시청각 콘텐츠는 보여주기 싫고, 장난감들은 금방 싫증을 내고요. 아기와 함께 놀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이 등장했어요. 자신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아기와 함께 능동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결과물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들이 몇 차례 이어지다 보니 재미당과의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재미당’이라는 이름이 재미있고 예쁜데요,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재미있으면서도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했어요. 무척 장기간 고민했었는데요, 오순도순, 집순이 등등의 이름들이 후보로 나왔지만, 마음을 확 잡아채는 무언가가 없었어요.

 

혼자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 보니 힘에 부쳐서 친구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재미당’이 탄생했어요. 아무 말 대잔치를 하다가 친구가 “재밌당”이라고 말했고 그 말에 “잼있당”하고 받아쳤는데, 순간의 느낌과 어감에 ‘이거다!’ 했어요. 근 3년간의 고민이 우스워질 만큼 한순간에 지어진 이름이에요.

 

작가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오래된 한옥 

 


고택에 자리한 작가의 그림

 


고택에서의 미술놀이

 

 

〈산들산들〉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아버지가 나고 자라신 집이 국가민속문화재예요. 경북 청송에 있는 1730년경 지어진 아주 오래된 한옥이죠.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조금 크고 나니 그곳에서의 시간이 색다르게 와닿았어요. 마치 내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랄까요? 집 뒤 숲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새소리, 기와지붕 위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들, 발을 디딜 때마다 기분 좋게 삐거덕대는 대청마루, 밤이 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의 모습,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소리와 TV도 없는 방에 모여 앉은 가족들이 밤새 나누는 끝없는 이야기들. 제가 살던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작지만 큰, 조용하지만 울림 있는 경험들이 갑자기 저를 흔들었어요.

 

서울로 올라오는 길, 점점 많아지는 차들과 시골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대비되면서 문득 ‘우리가 너무 바쁜 건 아닌가. 너무 빠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천히, 다소 느리지만 놓치지 않고 모든 것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었죠. 이건 게으름과는 분명 다른 개념이에요. 나의 가족들과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충분히 곱씹으면서 살아가고 싶었고,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산들산들〉을 기획하게 됐어요.

 


〈산들산들〉의 주인공 단풍이

 


〈산들산들〉은 단풍이와 소풍이가 자연 속에서의 재미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요?
단풍이와 소풍이, 그리고 친구들이 자연과 함께 천천히 많은 것들을 즐기고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날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빠르게 생산되고 소모되는 현대사회의 콘텐츠들과는 다른, 느리지만 분명하게 변화하는 자연과 함께 성장해가는 날들을 담았죠. 

 

살다 보면 분명히 변하는데 언제 변했는지는 잘 깨닫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은데요, 자연이 바로 그래요. 어느 순간 꽃이 피고 져버리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어느새 단풍이 물들었다가 낙엽으로 변하고, 졸졸 흐르던 개울물도 눈 깜짝할 사이 꽁꽁 얼어붙죠. 자연은 늘 변하고 있어요, 느리지만 확실하게요. 느린 변화 속에서 많은 것들을 즐기고 천천히 성장해나가는 그런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자연을 벗 삼아 즐겁게 노는 단풍이


 
주인공 단풍이는 호기심 많고 느긋한, 유쾌하고 명랑한 아이 같아요. 혹시 아이에게 바라시는 모습을 담으신 건가요?
단풍이는 굉장히 순하고, 애교도 많고, 매사 긍정적인 매력만점 꼬맹이로, 어딜 가든 사랑받는 캐릭터예요. 우리 아이가 소소한 것들을 통해서도 즐겁게 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제 바람이 투영된 캐릭터가 맞아요. 그래서 그림엔 나무, 꽃, 새 등 자연의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해요. 당연한 것들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공유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해요.

 

한국적인 감성이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어릴 적부터 한국적인 아이템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미술 학원보다 서예 학원을 먼저 다녔고, 물감보다 먹을 더 좋아했었죠. 한옥, 한복 등 한국적인 것들과 정서가 잘 맞았어요. 한옥에서 자란 경험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네요. 

 


여유를 즐기는 단풍이

 

 

현재 〈산들산들〉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굿즈를 제작 중이시죠? 어떤 제품들이 출시 예정인가요?
한국적인 일러스트가 그려진 컵, 가방, 족자 디자인으로 제작되는 패브릭 포스터 등과 다듬이, 복조리, 키 등 한국 전통 아이템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옛날 냄새나는 제품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현재 제작 중인 이모티콘을 잘 마무리하고, 오는 5월 18일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소소마켓에서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굿즈 판매로 소비자들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라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소소마켓을 시작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본격적으로 입점 및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에요. 

 

길게는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며 오랫동안 천천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재미당(단풍이)을 통해 우리의 전통과 느림의 미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재미당(www.instagram.com/jaemi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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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 #재미당 #미술하는엄마의재미있는집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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