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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통한 공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경험

2020-09-02

벽을 가득 채우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무성한 나뭇잎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이내 앙상한 가지가 남는다. 함께 어우러져 둥둥 떠다니는 과일과 꽃은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색과 형태는 어두운 배경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나뭇가지를 흔들던 바람은 곧 와닿을 것 같고, 과일과 꽃의 향을 금방이라도 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영상미디어 설치 작가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 1958~)의 작품에 대한 느낌이다. 

 

제니퍼 스타인캠프는 3D 애니메이션 분야의 개척자이자 디지털 애니메이션 분야의 대표 작가다. 움직이는 유기체나 추상적인 형태를 최신 기술을 이용해 렌더링 하는 디지털 미디어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자연을 소재로 새로운 영상미를 개척해 나간다. 

 

주로 자연의 이미지를 가지고 몰입형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하는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전시 ‘Souls’가 리안갤러리와 리만머핀 서울에서 동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2010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전시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주요 작품들과 최신작을 선보이며 지금까지의 전시들보다 더욱 심도 있게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Jennifer Steinkamp, <Judy Crook 12>(2019), Video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installation view 1 (사진제공: 리안갤러리)

 

Jennifer Steinkamp, <Judy Crook 12>(2019), Video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installation view 2 (사진제공: 리안갤러리)

 

 

먼저 리안갤러리에는 다섯 편의 영상 작품이 설치된다. 시각적인 신비로움과 철학적인 메시지를함께 전하는 <Judy Crook 12, 14>는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며 성장하는 나무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담은 작품이다. ‘Judy Crook’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작가가 아트센터 디자인 칼리지(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 재학 시절 큰 영감을 받았던 색 이론 교수 주디 크룩(Judy Crook)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실적인 렌더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삶의 순환성과 무한한 존재의 이상을 느끼게 한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꽃이 떠다니는 신작 <Still-Life 4>는 17세기 플랑드르 화파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21세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인생무상’이라는 바니타스 정물의 형식 대신 생의 환희, 삶의 기쁨 등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아 전통적인 정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는 생동감이 살아있는 애니메이션 정물을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시점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관점에 따라 세상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의미를 전하며,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활력과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Still Life 4>(2020) 설치전경 (사진: Design Jungle)

 

Jennifer Steinkamp, <Retinal 1>(2018), <Retinal 2>(2019), Video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installation view (사진제공: 리안갤러리)

 

 

<Retinal 1, 2>는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형태가 특징인 작품이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져 춤을추는 듯한 이 추상적인 이미지는 2018년 건축가 스티븐 제이 홀(Steven J. Holl)이 설계한 캔자스시티 넬슨 앳킨스 미술관(Nelson-Atkins Museum of Art)의 브로쉬(Bloch) 빌딩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스티븐 제이 홀이 빌딩 창문을 ‘렌즈’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망막 정맥을 모방, 눈 속 망막 정맥의 반투명하고 굴절되는 모습을 운동감 있게 표현한 애니메이션이다. 

 

리만머핀 서울에서는 세 점의 작품이 설치된다. 바람에 움직이는 자작나무와 잎사귀들의 모습을 통해 전시공간을 자작나무 숲으로 변화시키는 <Blind Eye 4>는 2018년 스타인캠프의 주요 개인전이 열렸던 곳인 미국 매사추세츠 주 윌리엄스타운에 위치한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 주변 자연환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 영상 작업 중 하나다. 작품에 등장하는 자작나무의 검은 점들은 눈동자를 떠오르게 하는데, 작품의 제목은 바로 이것을 나타낸다. 

 

Jennifer Steinkamp, <Blind Eye 4>(2019) detai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Edition of 1 with 1 AP,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and Seoul. (사진제공: 리만머핀 서울)

 

 

영상 작품 속 사실적인 느낌은 실존하는 자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지만, 이는 철저한 연구에 의해 완성된 것들이다. 작가는 작업을 할 때 현실의 오브제를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태와 질감, 움직임 등을 직접 연구하고 렌더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작가의 연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상상력은 신작 <Primordial 1>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생과 더불어 지구 생명의 초기를 묘사하는 수중 애니메이션 설치 작품으로, 물속에서 움직이는 생물들과 산소 방울은 작가의 수중 생태계에 대한 연구와 상상력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함께 어우러지며 충돌하는 생명체의 움직임이 관람객을 물속으로 초대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태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Jennifer Steinkamp, <Primordial 1>(2020),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Edition of 3 with 1 AP,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and Seoul. (사진제공: 리만머핀 서울)

 

<Daisy Chain Twist, tall> 설치전경 (사진: Design Jungle)

 

 

<Daisy Chain Twist, tall>은 부드러운 바람을 따라 나부끼는 꽃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길게 엮어 늘어뜨린 데이지 꽃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역시 꽃의 형태와 생동에 대한 작가의 연구로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들은 건축물의 3D 도면 확인 작업을 거쳐 각 벽 크기에 맞게 설치, 흰 벽을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통해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자연에 대한 통찰을 전하는 스타인캠프의 전시는 9월 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리안갤러리, 리만머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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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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