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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예술로 감상하는 한글 통해 새로운 확장 선보이는 디자인 아티스트 한재준

2021-01-28

[디자인정글 특별기획_ 디자인 아티스트를 찾아서 2] 한재준

 

우리의 고유 언어인 한글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소리를 내는 구조에 따라 문자가 만들어진 한글 창제의 원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려있는데, 한글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널리 알린 이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글의 이 과학적인 창제 방식은 조형에서도 드러난다.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한글의 조형성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해 한글이라는 문자가 지닌 넓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문자 추상에 대한 흥미에서 한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오랜 시간 한글을 연구해온 한재준 작가의 전시다. 

 

한재준, <이기불이>, 가변설치, 2020 (사진제공: 청주시립미술관)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이기도 한 한재준 작가는 한글이 소리와 꼴, 뜻이 하나의 이치로 이어진 글자이자 인류의 역사에 없던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진 문자임을 깨닫고 1980년대 후반부터 한글의 특성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글꼴 개발, 저술 활동, 전시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타이포잔치 비엔날레_ 타이포그래피와 사물’, ‘궁중문화축전_ 한글타이포전’, ‘세계문자심포지아 2016_행랑’, ‘LANGUAGE SHOW LIVE IN LONDON’, ‘이기불이(理旣不二)_ 영감과 소통의 예술’, ‘아시아 문자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한글, 스승전’ 등에서 다양한 디자인적 시도를 통해 한글의 예술성을 선보여왔다. 

 

그는 “사람을 깨우고자 한 깊은 뜻이 담겨있는 한글은 꼴에도 뜻이 있는 꼴뜻소리글자로 표의성까지 지녔으며, 소리와 꼴과 뜻을 하나의 이치로 풀어낸 착상과 표현 원리는 남다른 예술형식”이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누리는 한글과 <훈민정음>을 예술로 대하길 권유한다. 그를 통해 한글에서 문자 이상의 모습과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예술' 전시 전경 (사진제공: 청주시립미술관)

 

 

이번 전시 ‘한글·예술’(2020.12.30~2021.2.28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에서 한재준 작가는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나온 다름과 소통의 가치, 예술적인 확장의 가능성, 배려의 태도, 실용정신을 실마리로 삼아 ‘감정 소통 체계를 기반으로 한 문자형식의 예술’로서의 한글을 선보인다. 특히, 전시가 열리고 있는 청주는 세종대왕이 머물며 요양을 하고 한글창제를 마무리한 행궁이 자리했던 곳으로, ‘한글·예술’전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이 되는 ‘이기불이(理旣不二)’와 ‘자수간요 전환무궁(字雖簡要 轉換無窮)’이라는 철학을 핵심으로 하는 전시에서 작가는 하늘과 땅, 사람 간의 어울림의 이치를 강조하며 모든 조형물을 6개의 한글 자모로 표현, 현장에서 조립 및 설치를 했고, 직접 만든 자력 활자를 전시장에 뿌려 모두가 한글을 놀이와 예술로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한글을 예술로 바라보고, 새로운 소재와 형태로 디자인된 한글 작품을 통해 한글 창제의 의미와 뜻을 전하는 한재준 교수의 작품 세계에 대해 소개한다. 

 

 

'한글·예술'전에서는 한글 자모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이 전시된다. 

 

 

Q. 문자추상에 대해 꾸준한 연구를 해오셨는데, 시각 디자이너로서 한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문자추상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시작됐습니다. 남관 선생이나 고암 이응로 선생의 영향이 컸지요. 또한, 김환기 선생의 비구상에 대한 간명한 설명, 한·중·일 3국의 도자기를 예로 풀이한 박서보 선생의 미학적 관점, 글꼴모임의 활동을 비롯한 당시의 한국 미술·디자인계의 여러 상황이 저를 문자추상과 한글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다양한 활자꼴을 여러 벌 만든 후에 남다른 표현 세계를 펼쳐보자는 의도였지만, 일상의 한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말로는 한글이 우수하다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으니까요. 글씨를 쓰는 방법이나 과정도 이치에 맞지 않았고, 활자를 다루거나 글자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계 전반이 모순 투성이었어요. 그런 원인을 찾아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돈과 방황이 있었습니다.

 

주로 표현 소재나 재료처럼 다루던 한글이 서서히 제가 속한 사회의 핵심 문제로 다가왔고, 그런 문제를 풀어보고자 파헤치던 중에 한글이 곧 디자인이고 예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28자모 체계와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 속의 여러 상징과 은유가 새롭게 보이더군요. 깨달음의 예술이라고 할까요? 세종 이도라는 인물이 예술가로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Q.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중요한 축이 됐던 주요 활동은 무엇인가요?


연구의 기본 토대는 1984년에 마무리한 ‘기계화를 위한 한글디자인 연구’ 라고 할 수 있고, 그 이후에 발표한 ‘정보화 사회에서의 한글디자인 연구(1989)’, ‘한글꼴의 다양화를 위한 글자 구조 연구(1991)’, 2001년에 마무리한 ‘한글의 디자인 철학과 원리’와 2010년에 정리한 ‘지속가능한 한글의 가치’가 주요 내용이었다고 봅니다. 

 

Q. 여러 가지 한글 작업들을 해오시면서 한글에 대해 생각과 느낌도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요.


조형 요소 정도로 대하던 한글이 서서히 다른 차원의 대상으로 느껴지더군요. 알고 보니 훈민정음은 소리와 꼴과 뜻을 하나의 이치로 이어낸 체계였어요. 그동안은 소리, 꼴, 뜻을 각각 얄팍하게 나눠서만 봐 왔는데, 점점 더 깊이 연결 지으면서 보게 되더군요. 이제서야 겨우 ‘하나의 이치로 이어진 질서’를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자추상의 매력으로 다시 시작한 한글 공부였지만, 그 과정은 충격과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르던 내용도 많았고, 알고 있던 내용에도 오류가 많더군요. 제가 속한 국가와 사회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알게 되었지요. 한글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한글과 한국어의 개념이 뒤섞여 있는 것도 그렇고, 꼴에도 뜻이 있는 글자를 소리글자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을 대하는 태도나 해석도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쳐 있었지요. 세종대왕에 대한 평가나 인식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런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대중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시도하고 도전하는 동안 속마음 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글·예술'전 전경. 한재준 작가는 6개의 한글 자모로 다양한 캐릭터와 조형물을 탄생시켰다. 

 

 

Q. 오랜 시간 많은 전시들을 선보이시면서 한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과 그 변화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반응은 물처럼 흐르고, 세상 변화를 따르며, 전시 내용이나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입니다. 한때는 한글에 대한 사랑 표현 자체가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적인 태도처럼 비춰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세계 문자와 어울리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봅니다. 어울림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Q. 한글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차원 다른 글자라는 점이겠지요. 글자라는 형식의 예술이라 할까요. 부분만 보면 전체를 놓치게 되는 것도 또한 매력이라고 봅니다. 그중에서도 훈민정음 본질의 가치, 무한한 확장성, 전달을 넘어서 경험을 나누고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는 '한글씨알'의 체계를 활용 및 확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 Design Jungle

 

 

Q. 한글의 최소주의와 확장성을 ‘슈 이야기’로 표현하신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씨알 한글’도 만드셨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처음에는 이해하기 쉽게 ‘최소주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최적화’라는 표현과 통한다고 봅니다. ‘슈’는 초성 ㄱ, 중성 ㅏ, 종성 ㄱ, 3개의 자모로 구성했습니다. 천지인의 어울림, 초·중·종성의 조합과 순환 원리, 최적화와 자수간요 전환무궁의 원리를 간단하게 체험할 수 있어요. 사람이 곧 하늘 같다는 ‘깨달음’의 철학이 담겨있고, 2차원의 한글이 3차원을 넘어서도 본질 가치가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에서 밝힌 ‘이기불이(理旣不二)’, ‘천지지도 일음양오행이이(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 등의 내용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세상의 모든 것이 이미 하나의 이치로 이어져 있다는 깊은 뜻입니다. 3개의 자모 구성으로 70개 이상의 글자 조합이 가능하고, 12개 이상의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어요. 형식과 매체를 넘어 확장해 가고 있어요. 

 

ㄱ, ㄷ, ㅇ, ㅏ, ㅡ, ㅣ 6개 자모만으로 구성한 것은 ‘씨알한글’ 또는 ‘한글씨알’이라는 체계입니다. 6개 자모로 오늘의 한국말을 표기할 수 있는 활자 체계이지요. 다양한 재료나 형식으로 확장 중인데, 대표적인 것이 평면적인 자력(자성이 있는) 활자이고, 또 하나가 입체적인 맞짬 활자 체계예요. ‘맞짬’이라는 표현은 어느 분의 도움으로 얻었는데, ‘자모 조각이 잘 맞아떨어지게 짜인다’는 뜻이에요. 훈민정음 창제 철학과 원리를 응용했고, 최적화와 무한 확장성을 고려했습니다.

 

 

 

모든 조형물은 ㄱ, ㄷ, ㅇ, ㅏ, ㅡ, ㅣ 6개 자모로 구성되며, 이를 통한 한국말 표기와 조형적인 형태를 선보인다. ⓒ Design Jungle

 

 

 

Q.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들을 선보이시나요?


모든 바탕은 ‘한글씨알’ 체계의 활용과 확장입니다. 설치 형식으로 평면, 입체, 공간, 영상을 다뤘어요. 전시장의 모든 조형물도, ㄱ, ㄷ, ㅇ, ㅏ, ㅡ, ㅣ 6개 자모 만으로 구성했습니다.

 

Q. <훈민정음> 해례본 내용을 바탕으로 청주의 지역성과 오창호수도서관의 성격을 담아 세종실록에 기록된 초정리 행궁에 얽힌 이야기를 담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청주 지역의 이야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내용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발견한 깊은 인상을 제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지요. 1444년에 있었던 세종의 초정리 행궁이 안질 치료의 목적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지더군요. 훈민정음 창제 사실을 밝힌 후, 두 달 만에 청주 초정리에 도착했으니까요. 그 사이에 최만리의 반대 상소도 있었지요. 기록만으로는 초정 행궁이 한 달 만에 세워진 것으로 해석되는데,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인지라는 인물을 미리 삼도순찰사로 발령했다거나, 세자와 동행했다거나, 초정이 속리산과 가깝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한 겨울에 어렵게 세웠을 행궁이 훈민정음 반포 2년 후인 1448년에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았어요. 지역 주민이 불태웠는데, 세종은 이 범인을 그냥 풀어주라고 했더군요. 여러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훈민정음(해례본)>을 몇 번 더 읽고, 청주를 오고 가며 생각해 보니, <훈민정음(해례본)>의 내용이 전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오더군요. 직지와 훈민정음의 관계, 오창과학산업단지와 책과 훈민정음과 활자와 방사선 가속기 등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풀어낸 결과입니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한재준 작가 ⓒ Design Jungle

 

 

Q. 전시 관람 팁이 있다면?


전시장에 설치된 모든 조형물은 현장에서 직접 한글 자모를 짜 맞추듯 설치했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분리·해체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시면 더 흥미로울 수 있을까요? 그냥 편안하게 구석구석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전시 관람 후에라도 <훈민정음(해례본)> 33장을 한 장 한 장 그림책 넘겨보듯 읽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해설서로 알려진 이 책은 넘기면서 봐야 제맛이거든요. 내용과 형식이 정말 예술이지요. 

 

'한글, 스승' 전시 전경. 'ㄴ-한글제자체계'

 

경복궁 수정전에서 열린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훈민정음'

 

'2009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Q. 지금까지 선보이신 여러 작업과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2008년 파주에서 열었던 ‘한글, 스승’전입니다. 한글의 본질 가치를 드러내고 싶어서 <훈민정음(해례본)>33장 66면 전체를 펼쳐놓았던 최초의 전시였으니까요. 부제가 ‘책으로 피어난 한글 정신’ 이었는데,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함께 해야 오래가고 더 널리 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전시가 파주에서 경복궁 수정전으로 옮겨가면서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훈민정음’ 전시로 이어졌고,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_학(學).글.’ 전시를 거쳐서 다시 벨기에 브뤼셀로, 이태리 볼로냐로, 중국 북경으로, 2018년 경복궁 ‘붉은 한글’ 전시로, 영추문 열기 행사로, 역사책방 전시로,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 꼴로’ 운동으로, 지금의 청주 ‘한글·예술’ 전시로 이어져 왔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훈민정음과 한글, ‘한글씨알’ 체계를 중심에 놓고, 물 흐르듯 움직여 볼까 합니다.

 

인터뷰어1_ 정석원 디자인정글 편집주간(jsw@jungle.co.kr)
인터뷰어2_ 이경림 디자인정글 기획위원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한재준, 청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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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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