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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매일의 수집과 기록이 전하는 영감

2021-02-17

일상의 기록과 수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그것들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매일의 기록들이 창작의 원천이 되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보여주는 작가가 있다. 하루, 일 년 그리고 십 년이라는 세월을 훨씬 넘어 40여 년간 수집을 이어온 작가이자 수집가 Sasa[44]다. 

 

Sasa[44]의 수집품엔 한정판 운동화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컬렉션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희귀한 물건들도 있지만 매일 마시는 음료수 병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소한 물건도 있다. 영수증을 통해 오늘 무엇을 먹고 무엇을 구매했는지를 수집하는 작가에게는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의 순간들까지 수집의 대상이 된다. 

 

Sasa[44]의 전시 '와당탕퉁탕' 포스터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일상의 수집에는 말 그대로 작가의 하루하루가 담겨있다. 그는 버스를 타고 식사를 하고 작업실에 가고 통화를 하는 등 반복적인 루틴들도 수집으로 기록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순간들의 수집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Sasa[44]의 전시 ‘와당탕퉁탕’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통해 창의적 영감을 제시하고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선보이는 열다섯 번째 어린이 전시다. 

 

전시장 벽은 온통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사이 푸른 잎을 떠오르게 하는 구조물이 설치돼 있어 하늘과 나무를 떠오르게 한다. 

 


<연차 보고서 2006~2019>. 2019년도 통계를 추가한 가장 최근 버전이다. ⓒ Design Jungle

 

 

하늘색 벽엔 흰색 아이콘들이 줄을 지어 그려져있다. 이 아이콘들은 작가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것들로 자장면, 티켓, 책, 휴대폰, 시계 등의 아이콘이 가지런히 나열돼 있는 <연차 보고서 2006~2019>다. 작가는 2006년부터 책자, 포스터, 오디오 CD 등의 형태를 통해 ‘연차 보고서’를 발표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2019년도의 통계를 추가해 아이콘과 벽화 형태로 2006년부터 2019년도까지의 기록을 선보인다. 

 

 

작가가 의식주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여덟 가지 지표로 구성한 <연차 보고서 2006~2019>는 작가의 일상의 수집이자 기록이다. ⓒ Design Jungle 

 

 

<연차 보고서 2006~2019>는 총 여덟 가지 지표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작가가 기본적인 의식주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선정한 것들이다. 작가는 2006년부터 2019년까지 826그릇의 자장면을 먹고, 서울 시내에서 348편의 영화를 관람했으며, 2,500권의 책을 구매했다. 또 1,755명의 사람들을 기다렸다 용무를 보았고, 11,573건의 전화를 걸었다. 이 밖에도 설렁탕 또는 국밥, 교통카드, 작업실 출퇴근 기록 등이 있다. 이 내용들은 식당 주문서와 영수증, 영화 티켓, 각종 명세서, 출입카드, 순번대기표 등을 통해 기록된 것들이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산 365>. 작가가 20여 년간 모은 1,000여 개의 쇼핑백 중 선별된 365개의 쇼핑백이 전시돼 있다. ⓒ Design Jungle 

 

 

전시장 중앙에 서있는 초록색 구조물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신작 <산 365>이다. 365개의 쇼핑백이 진열돼 있는 이 작품은 쇼핑백이 이룬 숲 같다. 전시된 쇼핑백은 작가가 20여 년간 모은 쇼핑백 1,000여 점 중 선별한 것들로, 명품 브랜드 쇼핑백부터 유명 패션 브랜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익숙한 브랜드의 쇼핑백, 대형 서점의 쇼핑백, 자주 다니는 대형 마트 쇼핑백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브랜드의 쇼핑백이 구조물의 안쪽 높은 곳까지 진열돼 있다. 마치 365개의 쇼핑백이 이룬 산같다. ⓒ Design Jungle 

 

 

쇼핑백을 살펴보려면 구조물의 주변은 물론 중앙으로 난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바깥쪽에 놓인 쇼핑백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쇼핑백들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구조물 안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 구조물 저 높은 곳까지 시선을 돌리다 보면 숲에서 나무 꼭대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가 이 쇼핑백을 갖게 된 배경과 소비 패턴, 취향을 상상하게 하는 이 쇼핑백들엔 먹고 마시고 입고 소비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 우리의 삶과 문화가 담겨있다. 

 

한 브랜드의 여러 가지 디자인 쇼핑백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쇼핑백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쇼핑백 디자인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쇼핑백을 통해 브랜드 로고 디자인의 변천도 살펴볼 수 있다. 

 

<산 365>와 마주보고 서 있는 <티엠을 위한 티> ⓒ Design Jungle 

 

 

연차보고서 앞엔 ‘작은 산’ 역할을 하는 <티엠을 위한 티>가 ‘기념비’로서 <산 365>를 마주 보며 젖소 카펫 위에 서 있다.  

 

전시장 바깥쪽 벽엔 압도적인 크기로 ‘재미없는데 왜 해? IF IT’S NOT FUN WHY DO IT?’이라는 문구가 씌여있다. <재미>라는 이 작품은 오랜 시간 수집을 이어온 작가의 열정일 수도, 진짜 재미있는 것을 찾으라는 응원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한 ‘재미’를 찾는 일은 나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살기 위해 좋아했던 일을 접었던 것은 아닌가 후회도 되고,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재미> ⓒ Design Jungle 

 

 

어린이갤러리 2에서는 애니메이션 <Sasa[44] 작가의 와당탕퉁탕>이 상영된다. 새벽 4시 44분에 일어나 그날의 뉴스를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 중식당에서 자장면을 먹고 쇼핑을 한 후, 쇼핑백과 영수증을 정리하며 <산 365>를 구상하고 ‘연차 보고서’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내용으로, 작가의 일상과 기록이 어떻게 작업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쇼핑 일기’도 진행된다. 쇼핑을 단순한 소비가 아닌, 자신의 생활 방식과 기호, 습관을 돌아보는 활동으로 제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작가에게 쇼핑이 단순이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 영수증과 쇼핑백을 모으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물건을 고르고 기록을 남기고 ‘와당탕퉁탕’ 쇼핑백에 담아 간직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는 9월 9일까지 진행되며, 방역조치에 따라 사전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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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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