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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다양한 장르 넘나들며 ‘조각캐릭터’ 만든 디자인 아티스트 전항섭

2021-03-04

[디자인정글 특별기획_ 디자인 아티스트를 찾아서 3] 캐릭터 조각가 전항섭

 

캔버스를 배경으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이 색색의 옷을 입고 있다. 여러 색으로 곱게 물든 색동옷을 입은 물고기들은 푸른 바다와 붉은 땅, 드넓은 우주와 같은 공간을 누빈다.

 

이러한 ‘물고기의 낙원’을 만든 것은 바로 전항섭 작가다. 조각가인 그는 거대한 크기의 돌과 나무 등의 재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다 운명적으로 이 나무 물고기를 만나게 됐다.

 

 

전항섭 작가의 '물고기의 낙원' ⓒ 전항섭 

 

 

작가는 캔버스, 나무판 등에 아크릴, 오일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색채와 마띠에르를 표현하고 각각의 물고기를 풀어놓는다. 조각가인 그는 나무를 깎는 조각 작업부터 색을 다루고 화면을 구성하는 회화 작업, 천을 다루고 물들이는 섬유 작업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여러 가지 기법을 통해 전항섭 작가는 캔버스에 조각을 조합시킨 ‘평면조각’을 탄생시켰다. 그의 평면조각은 ‘조각캐릭터’로도 불린다. 조각이면서 회화이자 공예인 그의 작품은 하나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캐릭터가 성격과 특징을 지니는 것처럼, 전항섭 작가의 조각캐릭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느끼며 풍부한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전항섭 작가의 작품 근저엔 한국적인 사상이 흐른다. 그는 ‘한국인 특유의 휴머니티’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외국어로는 표현이 불가하다는 ‘정(情)’, ‘눈치’와 같은 그런 감성이 떠올랐다. 한국적인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이끌려 작업을 하는 그는 우리만의 정감을 담은 주제로 지난해 ‘춘천조각심포지엄’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항섭 작가는 물고기의 낙원 '어락원'에 한국적인 정서와 인간의 삶을 담았다. ⓒ 전항섭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어락원(漁樂園)’을 통해 한국의 정서를 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삶을 돌아보게 한 그가 이번엔 색다른 이야기로 작품을 선보인다. 오는 3월 8일부터 세종이야기미술관에서 개최되는 ‘3색꿈 콜라보전’에서 다른 분야의 작가들과 협업 전시를 갖는 것.

 

‘아기 색동고래의 꿈 X 꼬마 하연소의 꿈 X 아트사이클링 자동차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전항섭 작가는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지만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다르면서도 닮은 예술의 모습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작업의 기법과 재료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와 끊임없는 시도로 ‘아기 색동고래’라는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전항섭 작가의 작품세계를 탐험해본다.

 

작업을 하고 있는 전항섭 작가 ⓒ Design Jungle

 

 

Q. 주로 나무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이고 계신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원에 다닐 때 원시성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특히, 한국의 음양사상과 주역학 등과 함께 원초성,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 숨 쉬는가’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동판이라는 재료로 작업을 하게 됐죠. 그런데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서 돌로 재료를 바꾸게 됐는데, 또 다른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나무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벌써 30여 년이 됐네요.

 

예전에 한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시절엔 근처에 한옥 개조 공사가 한창이었어요. 한옥을 빨간 벽돌집으로 개조하는 작업이었는데, 작업하시는 분들을 통해 한옥에서 뜯어낸 나무를 구했고, 그 나무들을 운동장 한쪽에 쌓아놓고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업실에 쌓여있는 다양한 나무들 ⓒ Design Jungle

 

 

Q. 나무 평면조각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나무로 작업을 하다 보면 잘라 버리는 부분이 많아요. 버려지는 조각들로 나무 물고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벽면에 부착하는 작업들을 하게 됐습니다. 그림에 대한 일루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무물고기를 붙임으로써 생각의 범위를 넓혀보고자 배경에 색을 넣기도 하고, 나무 물고기를 여러 모양으로 설치해보기도 했죠. 300미터짜리 대규모 펜스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상당히 매력 있었어요. 기본적인 재료는 나무를 활용하되 다양한 파노라마를 펼치고 싶었고, 평면에 대한 생각들이 좀 더 새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평면조각’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Q. 삼베, 염색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하시는데요.

 

삼베를 평면에 붙이기도 했고, 직접 염색하고 재단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아크릴로 다양하게 배경을 만들기도 해요. 돌멩이를 붙이기도 하고, 도자기를 구워서 붙이기도 하죠. 조각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재료가 됩니다. 그렇게 만든 작업을 공간에 설치할 수도 있고, 평면에 펼칠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것이 조각가가 가진 장점인 셈이죠.

 

나무 물고기 작업 역시 물감으로만 작업하다가 색동 오방색의 비단이나 삼베 등을 나무물고기에 감기 시작했어요. 사고의 전환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질적이지 않고 상당히 잘 어우러졌어요.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실습, 색채 이론, 입체, 교육학 등 다양한 수업을 가르쳤는데, 그런 것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작업을 한지도 벌써 10년 이상이 됐네요.

 

작업실엔 다양한 재료와 색감으로 완성된 작품들이 빼곡하다. ⓒ Design Jungle

 

 

Q.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작업하시는데, 장르 간의 컬래버레이션을 의도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난 갇혀있는 것이 싫어요. 자유롭게 뭔가를 하고 싶죠. 요즘 순수 장르가 대학 커리큘럼에서도 많이 사라지거나 통폐합되고 있는데, 디자인은 풍성하게 융성하고 있죠. 그러한 영향도 없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것을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시대’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 작업을 좀 새롭게 열어가보자’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지식하게 굴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다 해보자’ 싶었죠. 조각가로 활동해왔지만 조각가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적인 측면에서 이미지 생산자로서의 목표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보고 싶었어요. ‘영적 자유로움’이라고 할까요?

 

사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함께 2인전을 하기도 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선배 한 분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분이었는데, 목표하시던 일이 이루어질 때 즈음 그렇게 되고 나니 참 허망하더군요. 슬럼프가 10년 정도 이어졌어요. 그동안 미술계는 격동의 시절을 겪었어요. 다양한 매체와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면서 미술문화가 완전히 새로워졌죠. 슬럼프를 딛고 물고기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는데, 2002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픔을 삼베와 물고기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무채색이 주를 이루었고, 이후 차츰 유채색이 드러나면서 색에 변화가 생겼어요. 요즘은 발랄한 색감을 마음이 가는 대로 사용하죠.

 

 

 

작가는 입이 없는 물고기들에 대해 '영적 존재들의 상징'이라 말한다. ⓒ 전항섭

 

 

Q. 물고기는 어떠한 의미인가요?

 

내가 생각해 온 한국적 이미지엔 토속신앙이 담겨있는데, 물고기는 이와도 깊은 연관이 있죠. 목어(木魚)는 불교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어요. 물고기 작업은 불교적 관점, 종교적 요소에서의 정신적, 영적 성장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런 내용들이 이어져 지난번 전시에서는 ‘어락원(漁樂園)’을 선보였어요.

 

Q. 이번 콜라보 전시에서는 좀 특별한 작업을 선보이신다고요.

 

이번엔 아기색동고래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오색 색동옷을 입은 아기고래죠. 지금까지 순수미술로 물고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번엔 디자인적 마인드로 접근해서 새로운 비주얼의 전개를 이어나가고자 해요. 그동안 종교적인 색채와 초월적인 내용이 강했다면 이번엔 세속에서 더 많은 대중들과 어우러져 재미있게 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다른 작가,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어떻게 매칭이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는 다양한 곳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여러 환경 속에서의 우리 존재를 깨닫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전항섭

 

 

Q.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내가 현재 존재하고 있다’라는 즐거움을 만끽하셨으면 좋겠어요. 작품에서 고래가 있는 배경은 모두 우리가 사는 환경이에요. 인생의 즐거움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작품 속 다양한 배경을 누비는 고래를 자신이라 생각하고 모두 다른 배경, 그 감각 속에서 자신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환경과 어우러지는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임을 깨닫고 우리 존재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번 콜라보전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경험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갈 생각이에요.

 

올 10월 전시도 준비 중에 있는데요, 2011년 춘천에서 평면조각전을 했었는데, 1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한번 평면조각 전시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인터뷰어1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인터뷰어2_ 이경림 기획위원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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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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