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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서유경 변호사의 내일, 인터뷰] 다름을 무대 위로, 유니버설 가구 디자이너 김예솔

2022-11-16

No.2 릴라 엘리펀트 (1부)

 

글_ 서유경 변호사

 

대한민국 서울의 서유경 변호사(좌) 스웨덴 룬드의 김예솔 디자이너(우)

 

 

김예솔은 스웨덴 룬드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목수 페더 칼슨(Peder Karlsson)과 함께 '모두를 위한 가구'를 만든다. 브랜드명은 작은 코끼리를 의미하는 '릴라 엘리펀트(Lilla Elefant)'. 작다는 형용사는 사려 깊음을, 코끼리는 지혜를 상징한다. 릴라 엘리펀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디자인, 즉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지향한다.

 

김예솔은 브랜드명처럼 작은 사람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대한민국 성인 여성의 시야에 비해 대략 50cm 정도 낮다. 일곱 살 때 급성 척수염을 앓으며 허리 아래의 감각을 상실했다. 세상이 일찌감치 그녀에게 시련과 좌절을 준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불완전함은 지체장애라 불렸다. 지체장애인 최초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을 때 사람들은 기적과도 같다고 했고, '빵실이'라는 별명처럼 늘 환하게 웃는 그녀를 극복의 아이콘이라 여겼다.

 

'장애를 극복하다'라는 말은 장애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장애라는 악조건을 기어이 이겨내고 버텨내 성취를 이뤄가는 드라마에 박수를 친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장애란 그 자체로 수용할 대상이자, 사랑해야 할 신체에 해당한다. 김예솔의 물리적 시야는 낮고 신체적 가동범위는 좁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조건으로 인한 경험들을 특별하게 여긴다. 그녀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하고, 요리하여 식사를 만들고, 차 한잔을 하며 독서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가구 디자인으로 구현한다.

 

현재 김예솔은 스웨덴에서 비로소 자연 속을 만끽하고 있으며, 복지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물리적 디바이스(device)로 신체의 기능을 확장시켜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영역에서 각광을 받던 이용자로서의 경험(user experience)을 가구 디자인에 접목시키고 있다. 가구란 환경과 신체가 조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interface)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1부에서는 김예솔의 삶의 결에 비추어, 왜 유니버설 가구 디자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살펴본다.

 

"지금은 스무 살에 꿈꾸어 왔던 것들을 이뤄가면서 살아가고 있네요"

 

 

 

(서변) 김예솔의 스무 살을 기억해요. 2007년 당시 김예솔이라는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했고, 상당히 화제를 모았죠. 저는 서울대 대학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고요. 그때, 대학신문에서 이런 말 했던 걸 기억하나요? "장애란 틀에 갇히긴 싫지만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버리고 싶진 않다. 장애 등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학부에서는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유학을 가고 싶다."

 

김예솔, <자화상>(2005년 作, 서울대 입시 제출 작품)

 


(예솔) 기억나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취재가 쇄도했고, 서울대 대학신문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죠.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지방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1급 지체장애인 학생이 장애학생 전형이 아니라 일반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다는 점 때문이었죠. 인간승리와 도전이라는 스토리로 공중파 3사에서 방송을 타기도 했고 각종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서변) 현재의 김예솔은 과거 스무 살 때 말했던 세 가지 내용을 모두 지키며 살아온 것 같네요.

 

(예솔) 대학 졸업 이후 대기업에서 6년간 디자이너로 회사생활을 했고, 2017년에 스웨덴에 유학을 왔으며, 이제 스웨덴에서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 가구회사를 설립했어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지금은 스무 살에 꿈꾸어 왔던 것들을 이뤄가면 살아가고 있네요. "Living in a dream", 꿈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죠.

 

(서변) 저는 꿈과 계획이 그리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꿈과 계획이란 것은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꿈은 추상적이고 그 범위가 한없이 폭넓어요. 계획은 구체적이고 명료하죠. 계획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꿈꾸는 것들을 잘게 소분하여 현실 속에서 하나씩 이뤄갈 수 있어요. 사실 저도 디자인 전공생이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저는 디자인이란 것은 계획과 설계의 또 다른 말이라고 봐요. 지금 당장 현실에서 무엇을 개선하고 싶은지 인식해가는 과정, 그건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중요한 재능이거든요.

 

"이 편지가 두 손에 전달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쩌겠어요. 저는 정말 간절했던 걸요"
 

 

 

(서변) 서울대 디자인연구동(49동) 건물에 있는 투명한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김예솔이 서울대 총장을 수신인으로 하여 편지를 보낸 결과, 서울대 미대에 엘리베이터와 구름다리 그리고 경사진입로가 생겼죠. 정말 획기적이고 놀라운 일이었으며,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대 디자인학부 학생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어요.

 

 

 

김예솔의 청원으로 생긴 서울대 디자인연구동(49동)의 구름다리

 

 

(예솔) 서울대 합격 소식을 들은 건 2006년 12월이었고 매우 기뻤지만, 기쁨도 잠시. 학교를 어떻게 다닐까 매우 막막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대부분의 수업을 듣는 곳은 서울대 디자인연구동(49동)인데,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수업을 듣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려웠고, 이 문제를 도대체 누구와 상의를 할 것인지 몰라서 고민만 하다가 용기를 내서 김민수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며 제 사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도움을 구했어요. 김민수 교수님께서는 제가 겪는 어려움을 교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리겠지만, 제가 직접 서울대 총장님(이장무 교수님)께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을 해 주셨어요.

 

저는 진심으로 수업을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편지지 두 장에 손 글씨로 빼곡하게 제 마음을 담았고, 이장무 총장님께 편지를 보냈어요. 이 편지가 두 손에 전달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쩌겠어요. 저는 정말 간절했던걸요.

 

 

 

김예솔의 청원으로 생긴 서울대 디자인연구동(49동)의 엘리베이터와 경사진입로

 

 

몇 달 후에 개강을 며칠 앞두고 서울대 미대 학장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장무 총장님께서 제 편지를 읽었고, 저를 위해서 디자인연구동(49동)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이후로 건물 입구에 휠체어로 진입할 수 있는 경사 다리와 구름다리가 생겼고, 건물 안에 장애인 화장실이 생겼고, 건물의 층을 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생겼어요.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는 꽤 규모가 컸고, 기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한 동안은 계단을 이용해야 했는데, 제 동기들이 저를 도와주었고, 순조롭게 강의실로 이동할 수 있었어요. 가령, 3층에서 수업이 있다면 4명의 남자 동기들이 저를 휠체어 채로 들어 올려서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었어요. 제 동기들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의리도 있었죠. 돌이켜 보면 제가 소외감을 느끼지 못했던 건 좋은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김예솔의 자서전 <오늘 하루만 더 긍정>에 수록된 삽화 '나의 초등시절' (출판: 마음지기)

 

 

(서변) 눈을 맞춰주고, 귀를 기울이는 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에요. 김예솔이 어떻게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지 여러 사람들이 합심을 해줬던 거네요.

 

(예솔) 여러 사람들의 고마운 도움이 있었고, 대학기관이 장애학생을 포용해야 한다는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진보적인 구성원들의 덕이 컸어요. 선배들 중에는 시각장애인도 있고, 청각장애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는 지체장애인으로서 상징성이 있었어요. 신체적 활동이 제약되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까 어디에서든 바로 눈에 띌 수밖에 없죠. 어쨌든 이 경험을 통해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자유가 좀 더 넓어질 수 있기를 바라 왔어요. 지체장애인이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보다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게 환경을 개선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체장애인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게 굳이 뉴스감으로 여겨지지 않는, 지체장애인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길 바라죠.

 

"제가 할 몫이 있긴 했었어요. 백번 좌절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지리멸렬한 실패의 순간들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

 

김예솔의 자서전 <오늘 하루만 더 긍정>(출판: 마음지기)

 

 

(서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약 10년 동안 김예솔은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사람이었어요. 자서전 《오늘 하루만 더 긍정》을 발간하거나 각종 강연을 통해서도 김예솔의 생각을 많이 표현했죠. 그 내용들을 모두 사전 취재하다 보니 공통된 키워드가 보이더군요. 주로 '장애', '긍정', '꿈', '성취', '도전'과 같은 단어들이었어요. 이때, 이 키워드가 과연 김예솔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예솔) 세상에는 희망이 필요하잖아요. 살기 팍팍하니까요. 제 인생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나 봐요. '도전'과 '성취'라는 말이 강조되는 까닭은 그만큼 실패와 좌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고 환경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이 제 얼굴에 대고 "너는 여기 들어오지 마!"라고 말하며 막다른 벽으로 밀어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허리 밑으로는 감각이 없고, 허리가 심하게 휘어 있어서 척추에는 철심이 목에서부터 꼬리뼈까지 박혀 있지요. 비가 오면 허리가 아파서 누워있어야만 하고요.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나란 사람. 그런 뻔뻔한 자기애가 있어요.

 

김예솔의 자서전 <오늘 하루만 더 긍정>에 수록된 삽화 '병상에서'

 

김예솔의 자서전 <오늘 하루만 더 긍정>에 수록된 삽화 '거울 속의 나'(우) (출판: 마음지기)

 

 

(서변) 다른 이에겐 학교란 '가야 할 곳'이고, 직장이란 '다녀야 할 곳'이며, 유학이란 '기회 되면 가보면 좋은 것'일 수 있는데, 김예솔에겐 모두 절실함의 대상이었을 것 같아요.

 

(예솔)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백 번은 좌절해야 겨우 단 한 번을 이뤄낼 수 있는 일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단 한 번의 기회에 기가 막힌 만남을 통해서 인생이 새로운 길로 열리기도 했어요. 참 감사하죠. 하지만 제가 할 몫이 있긴 했었어요. 백 번 좌절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지리멸렬한 실패의 순간들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 두드리면 열린다고 믿고 있어요. 자서전 《오늘 하루만 더 긍정》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쓴 책이죠. 각자가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인생이란 답이 없는 시험과도 같아요. 나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나 자신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서변) 김예솔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한편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장애인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예솔) 세상은 자꾸만 저를 '극뽁이'라고 불러요. 어려움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냈대요. 식상한 꼬리표예요. 이제는 바꿀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전혀 극복하지 않았거든요! (웃음)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을 해석하고, 그 해석된 결과가 나의 수식어가 될 때가 불편하죠.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장애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장애란 제가 수용해야 할 제 일부이자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신체적 특징이라는 것이죠. 장애인도, 장애 유무를 떠나서 똑같은 인간이고 존중받을 인격체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저부터 '나의 장애'를 진솔하게 대하려고 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어요. 그리고 "김예솔이라는 사람이 지구상 어딘가에 살고 있고, 이러저러한 활동도 하고 있고 … 아,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라고 하더라." 이 정도로만 소개되면 좋겠어요.

 

"장애인에게 특화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중들도 혜택을 보는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죠"

 

 

 

(서변) 이번 인터뷰에서 목표로 하는 건, 유니버설 디자이너(universal designer)로서 김예솔과 '모두를 위한 가구' 디자인 회사로서 릴라 엘리펀트(Lilla Elefant)를 이해하는 거예요. 이미 김예솔이란 사람의 삶과 경험 그 자체만으로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분야에서 상당한 강점이 있어요.

 

(예솔) 북미나 서유럽에서는 장애인을 구매력이 있는 고객으로 봐요. 즉, 장애인들도 마케팅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세계보건기구의 세계장애보고서 2011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5%가 장애인이에요*. 유니버설 디자인은 1970년대 미국에서 장애인권운동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초기에는 공적 영역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과 제도에 차별금지 조항을 반영하기도 했어요. 가령, 건축물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들이 그 예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장애인 차별금지 또는 배려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니즈(needs)에 대해 파악하고 시장적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해요. 기업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 고객들은 똑똑하게도 본인의 소비가 시장과 경제 그리고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어요. 기업들이 정상적인 신체라고 하는 획일적 관념을 탈피하여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아, 노령층 등 신체적 다양성을 고려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죠.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장애보고서 2011(World Report on Disability 2011)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대략 15%가 장애인이고, 약 2~4%의 인구가 신체적 기능에 있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변) 유니버설 디자인과 베리어 프리 디자인(barrier free design)은 다른 개념이죠?

 

(예솔) 10년 전만 하더라도 유니버설 디자인은 생소한 개념이었고, 베리어 프리 디자인(barrier free design)과 잘 구별되지 않았어요. 베리어 프리는 말 그대로 장애인에게 장벽이 되는 것을 없애는 것을 의미해요. 그에 비해 유니버설 디자인은 베리어 프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그 보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차별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나의 쾌적한 보편적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요.

 

(서변) 참 재밌다고 생각된 부분이 있어요. 유니버설 디자인은 그야말로 보편성, 즉 수요자에 경계를 두지 않는 것에 기반을 두죠.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떠올릴 때는 대개 연령적인 측면에서는 노약자, 성별적인 측면에서는 여성, 신체적 측면에서는 장애인 등을 특정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종의 역설(逆設)이죠. 보편성을 지향하지만, 수요자를 특정하게 보는 시각이 전제된 거라고 봐요.

(예솔) 유니버설 디자인이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건 정말 좋은 현상이에요. 그러나 언제나 답은 아니에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방법은 없다(There is no solution for all problem)"라는 말처럼. 저는 발상을 전환해봐요. 유니버설 디자인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을 찾는데 중점을 둔다면, 장애를 가진 개인이 가진 다양한 문제점을 다양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거예요. 다름 자체를 무대 위로 올리고 싶어요. 장애인에게 특화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중들도 혜택을 보는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죠. 그게 바로 제가 릴라 엘리펀트를 만든 이유입니다. 약 100년에 걸친 현대 디자인사를 살펴보면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모양의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단순히 앉아서 작업을 한다는 기능은 똑같은데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는 장애인의 삶의 특성과 몸의 자유도를 고려한 디자인 하나쯤은 제대로 나와줘야 할 때가 아닐까요?

 

"휠체어를 탄 제 모습이 멋져 보인다면, 그 어린이들은 자라나면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슬픈 게 아니란 것도 이해할 거예요"

 

 

 

(서변) 국내 대기업 KT에서 UI(User Interface)와 UX(User Experience) 디자이너로 약 6년 간 일하다가 2017년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죠. 왜 스웨덴이었는지 알고 싶어요.

 

(예솔) 회사에서는 디지털 분야에서 UI와 UX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5년 차 정도 될 때,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변화가 필요했어요. 가상세계와 디지털 분야의 마켓이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저는 신체와 환경을 비롯해 물리적 세계를 다루는 기본적인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스웨덴으로 1주일 정도 여행을 갔다가, 룬드 대학교(Lunds universitet)를 알게 됐는데, 이케아(IKEA)에서 스폰서로서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꿀 정보를 얻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입학지원서 마감까지 약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전액 장학생으로 선정되었고, 생활비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어요. 스웨덴에 대한 정보도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막연한 꿈과 기대만 가지고 비행기에 탔죠.

 

(서변) 스웨덴은 어떤 나라였고, 김예솔은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예솔) 한국과는 달리 위계질서가 없이 상호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 편했어요.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여러 가지 기반시설이 정말 잘 정비가 되어 있고 무료 혜택도 보장해줘서 혼자서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요. 스웨덴은 GDP가 높아서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나라예요. 그러면서도 스웨덴 사람들은 환경, 기후, 노동, 사회적 불평등을 비롯한 각종 문제에 관심이 많고, 생각에서 그치기보다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기꺼이 실천하려고 하며,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있죠.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이용자의 자리를 확보한 스웨덴의 버스와 기차의 모습(사진 제공: 하현주, 김예솔)

 

 

(서변) 스웨덴에서 '몸의 자유'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스웨덴에서 어떤 재밌는 몸짓 활동들을 만끽했나요?

 

(예솔) 한국에서 그동안 억눌러 왔던 욕망(!)이 스웨덴에서 자유롭게 분출이 되었어요. 유학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가능하면 스웨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고 싶었고, 그게 더 큰 배움이라고 생각했어요. 국립무용단인 '스코네즈 단스티어터(Skånes Dansteate)'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현대무용 연합 워크숍이 있었고,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김예솔이 2019년 스웨덴 말뫼에서 야외 춤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 김예솔)

 

 

김예솔이 무용수로서 2020년 "Europe Beyond Access"에 참여한 사진 (사진 제공: 김예솔)

 


2019년 여름 스웨덴 말뫼에서 무용수로 참여해서 함께 공연을 했어요. 공연장 내부와 같은 닫힌 무대가 아니라 공원과 미술관 앞 광장과 같이 열린 무대에서 몸짓을 통해 감각을 일깨워갔어요. 지나가는 일반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3명의 장애 무용수와 4명의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춤을 추었죠. 

 

그 중에서도 어린 관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하며 지켜봐 주던 것이 인상이 깊었어요. 어린이들에게 휠체어를 탄 제 모습이 멋져 보인다면, 그 어린이들은 자라나면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슬픈 게 아니란 것도 이해할 거예요. 

 

춤에 대한 열정을 높게 봐주신 덕분에, 2020년에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로 "Europe Beyond Access"라는 댄스 워크숍도 갈 수 있었어요. 다양한 댄스 테크닉을 익힐 뿐만 아니라, 유럽의 공연 예술계에서 장애 문제와 접근성이라는 주제로 심도 있는 토론도 했어요. 그 수준이 매우 높아서 매우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스웨덴에서 자연 속에서 여러 가지 스포츠를 경험하며 몸의 자유와 확장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장애인 스포츠 대회에 참여하는 김예솔 (사진 제공: 김예솔)

 

"앞으로 기업은 장애인이나 노령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누가 먼저 그 시장을 내다보고 준비를 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스웨덴의 아나토믹스 스튜디오(Anatomics Studio)의 의수족 커버 (사진 제공: Anatomics Studio)

 


(예솔) 스웨덴의 아나토믹스 스튜디오(Anatomics Studio)를 소개하면 좋겠어요. 의수족 커버를 만드는 회사예요. 창립자 에밀리가 본인의 석사논문으로 쓴 내용을 상품으로 만들었죠. 흔히 의수족이란 병원에서 맞춰주는 의료기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장애를 평생 함께 해야 할 나의 몸의 특징으로 여길 수 있다면 의수족은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이 될 수도 있어요. 마치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테를 골라서 자신의 패션감을 보여주듯이 말이죠. 의수족 커버를 고객이 요청한 대로 특별하게 주문하는 커스텀 디자인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기성 디자인을 갖추고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회사가 보다 확장되었는데,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지요.

 

 

 

(서변) 지금껏 이야기해준 비즈니스 분야는 무척 흥미로워요. 김예솔은 이런 비즈니스 분야의 전망이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솔) 장애인을 메인 고객으로 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어떻게 돈이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분들이 많았어요. 너무 협소한 고객군에 해당하니 시장성이 없다고도 비판했죠.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에요. 단기적인 이윤을 생각한다면 당장 돈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 기업은 장애인이나 노령층 인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누가 먼저 그 시장을 내다보고 준비를 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이미 북미권과 서유럽권에서는 노령층 인구를 이른바 "골드(gold)"라고 해요.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 은퇴 후 구매력도 갖춘 노인들이 많은데, 정작 그들을 위한 적합한 서비스들이 많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줄이고 다양함을 존중하는 어댑티브 패션(adaptive fashion) 분야도 유망합니다. 장애인에게 편리한 옷을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이 청소년에게 공급할 수 있는 의류시장 규모와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어요. 그래서 이러한 흐름을 읽고 패션계에서부터 브랜드 라인을 내놓고 있죠. 

 

그리고 최근 더바디숍에 갔는데, 신체가 절단되거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모델을 기용한 '셀프 러브(Self Love)' 광고를 보고 정말 좋았어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만큼 좋은 모델이 어디에 있겠어요. 

 

 

신체가 절단되거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더 바디샵(THE BODY SHOP)의 광고 사진

 

 

(서변) 바로 그 포인트에서 릴라 엘리펀트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가요?

 

(예솔) 의생활 부분에서 그런 흐름이 시작되었다면, 이제 주거 생활 분야로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확장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기업이 장애인을 '배려'와 '시혜'로만 여긴다거나 사회공헌 차에서 지원해줘야만 하는 소극적 존재로만 인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장애인도 적극적인 소비군이 될 수 있고, 장애인을 위한 시장도 형성될 수 있어요.

 

인생이 짧게 느껴지고,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늘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고,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의미가 있는데 쓰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오늘 해야 할 일이 단순해지죠.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휠체어를 타면서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불편함을 없애고 삶의 질을 높이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신체와 일상 환경이 접하는 인터페이스로서 가구 디자인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최근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가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전재산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기부를 하여 화제가 되었어요. 이본 쉬나드는 자기와 친구가 쓸 수 있는 등산복과 등산장비를 만들면서부터 일을 시작했고, 지금의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게 되었어요. 시간이 흐르면 저도 사업가로 성공해서 파타고니아의 할아버지처럼 뜻깊은 일에 기부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죠. 하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여유롭게 TV를 시청할 때의 필수품. 바로 리모컨(remote control)이다. 일반 대중들도 손쉽게 쓰는 이 물건의 발명자는 '게으름뱅이의 아버지' 유진 폴리(Eugene Polley)이다. 그가 전신마비인 동생을 위해 리모컨을 발명하게 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려 깊은 디자인, 그것이 바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 즉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김예솔이 디자인하고 페더 칼슨이 목공 작업을 하는 릴라 엘리펀트의 가구는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지향한다. 그런데 비즈니스 관점에서 혹시 장애인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닌지, 특수한 계층만 소비군으로 정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 김예솔은 눈을 반짝이며 발상을 전환하면 "장애인에게 특화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중들도 혜택을 보는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 착안해보면, 성공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굳이 '유니버설'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고, 장애인이 자신을 위해 만든 디자인인지 모르고, 비장애인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2부에서는 김예솔이 북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가구 비즈니스를 하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목공예 장인 페더 칼슨 씨와의 인연, 국내 라이선스 사업자 아이앰히어(IamHere)와 함께하는 마케팅, 그리고 서변과 함께 논의한 리걸 이슈에 관해 다룬다.

 

인터뷰어_ 서유경 (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변리사)
인터뷰이_ 김예솔 (릴라 엘리펀트, 공동창업자)
사진_ 이준범 (스튜디오 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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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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