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인터뷰

[정글 특별 초대석] 세종 이도가 이뤄낸 훈민정음의 핵심 가치_ 한재준 교수 인터뷰

2023-03-16

‘한글’을 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적인 창제방식과 우수성에 대해 말한다. 물론 한글의 창제원리는 백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우수하지만, 그에 가려 한글의 예술성은 미쳐 전달되고 있지 못한 듯하다.

 

한재준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문자 추상에 대한 흥미에서 한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오랜 시간 한글을 연구하며, 한글의 조형성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 한글이라는 문자의 신비로움과 가능성을 전하고 있다.

 

한재준 교수

 

 

그는 한글에서 예술성과 디자인의 원리를 본다. 인간과 자연, 삶의 철학을 본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한글에 담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글의 창제 철학과 이치, 훈민정음의 핵심 가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만물의 소통, 우주와 인본의 이치 등을 말하는 한재준 교수로부터 한글의 예술성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 들었다.

 

한재준 교수

 

 

한글을 새롭게 보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추상 미술에 대한 관심이 시·서·화(詩書畵)로 응축된 문자추상(文字抽象)으로 이어졌고, 추상과 문자 예술이 다시 저를 한글과 훈민정음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런데 한글의 실상은 슬펐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철학과 이치는 ‘전환무궁’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데, 한글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글자 꼴의 수준이나 활용 체계도 불편했고, 한국 사회의 한글에 대한 인식도 뒤죽박죽 했습니다. 한글과 한국어라는 개념까지 뒤섞여 있었지요.

 

세종 이도라는 인물이 500여 년 전에 이뤄낸 훈민정음의 핵심 가치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이름까지 바뀐 한글은 거의 길바닥에 버려진 수준이었습니다. 그래픽 예술의 언저리에 있던 제가 부끄러웠지요. 한글을 붙들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글의 원작인 훈민정음이 세상에 없던 디자인이고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훈민정음 28자모 체계와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여러 표현과 내용을 달리 보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대왕 세종을 인간 이도로, 예술가로 다시 모시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습니다. 세종의 한글창제와 한글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도는 훈민정음으로 새 글자 창제 이상의 또 다른 세계를 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훈민정음> 제자 해 첫 문장이 ‘하늘과 땅의 도리가 오직 음양오행이이(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입니다. 그 다음 장에는 이치가 둘이 아니라는 내용의 ‘이기불이(理旣不二)’라는 표현도 있지요.

 

또한, ‘어찌 천지 귀신이 함께 쓰지 않겠는가(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라고 하면서 ‘만물지정(萬物之情)’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만물의 소통을 밝힌 것이지요. 초성·중성·종성의 조합 원리에도 천지인 삼재 철학을 담았습니다. 초성은 하늘이고 중성은 사람이고 종성은 땅이다. 하늘과 땅이 많은 것을 주지만 결국은 사람이 하기에 달렸다는 내용입니다. 중성이 없으면 온전한 글자를 이룰 수 없다는 이치, 사람의 역할과 가치를 일깨운 철학이지요. 

 

주체성과 정체성, 깨달음의 철학을 훈민정음이라는 체계로 내보였습니다. 다른 차원의 ‘의미’이지요.

 

한재준 교수

 

 

‘한글이 없었다면 한국어도 온전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한글과 한국어(한국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훈민정음(한글)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우리 말의 온전한 기록은 불가능 했겠지요. 당연히 의사소통은 더 힘들었을 것이고요. 지금까지도 우리 글을 한자나 로마자로 빌려서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베트남이나 일본이나 튀루키예공화국처럼요. 다행히도 우리는 훈민정음 덕분에 말도 살았고 글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우리말이 독특하니까 한글도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더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도라는 인물이 죽을 각오로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훈민정음도 한글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말과 글도 온전치 못했겠지요.

 

아직도 우리말과 글을 세종 이도가 창제한 훈민정음(한글)과 헷갈리게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잡아야 합니다. 한글은 글자 체계이고 한국어는 한국사람들이 주로 쓰고 있는 말이지요. 한글로 적은 모든 글이 우리 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어나 일어나 찌아찌아어도 한글로 쓸 수는 있지만, 그 글을 우리 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한글과 지금의 한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다시 강조하자면, 한글의 원작은 훈민정음이고 훈민정음의 원작자는 원정 이도입니다. 오늘의 한글은 원작과는 다르지요. 28자모 체계에서 4자모가 빠졌고, 사성법이나 연서·병서법도 제대로 살려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이름도 내용도 본디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요. 이런 한글을 세종대왕의 창제라고 가르치는 것도 사실은 문제입니다. 존중이 아니지요. 작가를 낮추는 일이고 작품에 대한 훼손입니다. 훈민정음은 대한민국이나 한국어나 오늘의 한국사람만을 위한 글자 체계가 아닙니다. 만물지정, 천지인의 어울림을 위한 의사소통 체계입니다.

 

광화문 현판의 한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광화문 현판과 한자 글씨 문화광(門化光)은 원형 복원이 아닙니다. 가짜이지요. 이런 사실부터 널리 알려야 합니다. 엉터리 한자 글씨를 한글로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민감한 문제들이 얽혔습니다.

 

문화재청은 고증을 거쳤다고 하지만 공개된 자료들을 꿰 맞춰보면 믿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현판의 글씨나 색깔만이 아니라 현판의 크기나 달아 놓은 위치까지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복원이 아니라 재현이라고 해도 바로잡아야 할 수준입니다.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비워 두거나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훈민정음체, 훈민정음 글자꼴로 다시 만들자는 쪽입니다. 아시겠지만,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만이 아닙니다. 고종 황제의 것도 더욱 아니지요. 세상에 없던 의사소통체계, 훈민정음을 창작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류사적인 가치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조선의 정치나 역사만이 아니라, 이 땅의 과학과 예술, 철학의 가치와 상징성을 함께 높이자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광화문의 이름도 세종 때에 지었고 훈민정음 체계엔 우주와 인본의 이치까지 담겼습니다. 광화문 광장에도 잘 어울리고, 그 어떤 글씨보다 의미나 가치도 큽니다. 이런 제안을 입증할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 해례본도 남아 있으니 시민의 호응과 지지도 높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래아(ㆍ)’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가치가 있나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삼킬 탄(呑)자의 가운뎃 소리와 같다고 했고, “• 는 혀가 움츠러들고 소리는 깊으니, 하늘이 자(子)시에서 열리는 것과 같다.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가치와 역할을 강조한 중성 글자의 맨 앞에 내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뜻 깊은 자모를, 누가, 왜, ‘아래아’라고 부르게 했을까요? 왜, 사라진 자모, 없어진 자모, 쓸모없는 자모라고 단정할까요? 아래가 아니라, 위, 천지인 중에서는 천, 하늘을 상징한 꼴이고, 중성 중에서는 으뜸 꼴인데 말입니다. 저는 이 꼴을 훈민정음 창제 철학의 핵심, 의사소통 체계의 혁명 씨알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꼴이 빠지면 훈민정음의 알짜 가치가 사라지고, 창제 원리나 체계도 허물어집니다. 결국엔 얼빠진 한글만 남겠지요. 이 • 꼴을 살려야 한글도 더 잘 살아날 수 있습니다. 버려서는 안 될 자모입니다.

 

한재준 교수

 

 

작업 및 전시를 하실 때 한글 외에 지역성 등을 연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요? 


제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특정 주제나 대상을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들을 있게 했거나 있게 한 어떤 배경, 또는 ‘그러함’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만납니다. 

 

현대인들이 훈민정음과 책 <훈민정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글자나 해설서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보기엔 예술이고 철학이기도 합니다. 걸작 중에 걸작이지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대한 가치가 여전히 많이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가치가 있으며 이를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세종대왕을 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 이도로 다시 보기를 바랍니다. 성군이라는 표현이나 신분 때문에 소홀하게 다뤄온 내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치적 중심의 관점만이 아니라, 소헌왕후나 양녕대군을 비롯한 가족 관계에서도 그렇고, 이도라는 인물을 예술가나 혁명가 등으로 재조명할 가치도 크다고 봅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내용에서도, 창작 동기와 배경, 과정과 방법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따라야 합니다. 더 세세하게 알리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요. 특히, 창제와 보급 과정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배경이나 이유도 더 실감나게 끌어내야 하겠습니다.

 

작은 예의 하나로 세종 이도가 충녕대군 시절인 17살 때의 태종실록 기사를 한 대목 추천합니다. 이도의 예술적인 재능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이미 서화(書畫)·화석(花石)·금슬(琴瑟) 등 모든 유희 애완(愛玩)의 격물(格物)을 두루 갖추었고, 예기(藝技)에 정(精)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훈민정음 창제나 정간보라는 기보법을 이루게 했겠지요. 소리와 꼴과 뜻을 하나의 이치로 이어내게 한 중요한 배경이라고 봅니다.

 

[예시 자료] *자료 출처: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1312030_003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2월 30일 을해 3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세자와 제 대군과 공주가 헌수하고 노래와 시를 올리다


이 해 겨울에 세자(世子)와 여러 대군(大君)과 공주(公主)가 헌수(獻壽)하고 노래와 시(詩)를 아뢰었다. 충녕 대군(忠寧 大君)이 임금에게 시의 뜻을 물었는데, 심히 자세하니 임금이 가상하게 여겨 세자에게 말하였다.
"장차 너를 도와서 큰 일을 결단할 자이다.” 세자가 대답하였다. "참으로 현명합니다."
임금이 일찍이 충녕 대군에게 이르기를,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평안하게 즐기기나 할 뿐이다."
하였으므로, 이때에 서화(書畫)·화석(花石)·금슬(琴瑟) 등 모든 유희 애완(愛玩)의 격물(格物)을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충녕 대군은 예기(藝技)에 정(精)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세자(世子)가 충녕 대군에게 금슬(琴瑟)을 배웠기 때문에 화목하여 틈이 없으니, 임금이 심히 그 화목한 것을 가상하게 여겼다.

○是年冬, 世子、諸大君、公主獻壽, 奏歌詩。忠寧大君問詩意於上甚悉,上嘉之,謂世子曰: "將佐汝斷決大事者也。" 世子 
對曰: "固賢也。" 上嘗謂大君曰: "汝無所事, 安享而已。" 於是,書畫花石琴瑟凡戲玩之物,無不具,故大君於藝無不精。世子因學琴瑟於大君,怡然無間,上深喜其和也。
•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702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예술(藝術)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facebook twitter

#한글 #훈민정음 #세종대왕 #세종 #이도 #한글창제 #한재준교수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