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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궁금한 인터뷰] 중국과의 디자인 교류 위해 노력 이어온 백금남 교수

2023-04-25

백금남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38년을 재직하며 한국 디자인 교육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등과의 디자인 교류의 물꼬를 튼 그는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중국과의 많은 교류의 기회를 가졌다.  

 

백 교수는 후학 양성 외에 디자인 작업에도 열정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외에서 160여 회의 개인전을 열 만큼 다양한 작업을 해온 그는 포스터 분야와 판화 분야의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담’은 그가 평생에 걸쳐 해온 작업의 주제다. 그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담’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또 외부와 소통한다.   

 

올림픽공원에 설치된 김중업 건축가의 서울올림픽기념 상징조형물 ‘평화의 문’ 천정화는 그의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그는 ‘사신도’를 주제로, 한국 고건축의 단청이 갖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표현했다. 

 

그는 88서울올림픽 공식 문화포스터를 제작한 것을 비롯해 88서울올림픽 승마경기장 벽화, 88서울올림픽 공식 미술엽서 등을 제작하며 서울올림픽 디자인 영역에 참여했다. 

 

활발한 교육 및 작업 활동을 통해 한국의 디자인을 널리 알린 백금남 교수로부터 그동안의 작품활동에 대한 이야기와 근황에 대해 들었다. 

 

백금남 교수

 

 

문학적인 소재로 작업을 하셨는데.


1969년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의 조교활동을 한 후 강사로 활동할 때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주제가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였다. 이어령 선생의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했는데 그 분의 글을 상당히 좋아했고 그 책을 무척 좋아했다. 전시의 부제는 ‘문학의 이미지를 위한 그래픽전’이었다. 

 

2년 뒤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는데, 첫 번째 개인전의 후속으로 ‘나뭇잎 하나 띄우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했다. 

 

세 번째 전람회에선 종이배 시리즈를 선보였었다. 한쪽은 내 포스터 작품을, 한쪽엔 종이배 시들을 모아 엮었다. 실크스크린 작업에 직접 종이배를 접어서 붙였다.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들, 1972년작

 

<종이배> 시리즈. 교통사고가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당시에는 포스터를 가지고 개인전을 한다는 것도 생소한 때였는데, 문학적, 서정적인 감성을 포스터디자인으로 보여주셨다. 


이어령 선생님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의 글이 너무 와닿았다. 대학 내내 그 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 글들의 느낌들을 작품 속에 녹였다. 

 

서울올림픽 문화 포스터도 제작하셨다. 


올림픽을 앞두면 보통 경기포스터, 문화포스터, 아트포스터를 제작한다. 당시 문화포스터에 10명 정도의 디자이너가 선발됐다. 각자 주제를 선택해서 포스터 작업을 했다. 나의 주제는 ‘담’이었다. 담과 처마가 있고, 가운데에는 신라 와당 중 영원한 미소라는 인물상의 와당을 해가 뜨는 것처럼 디자인한 포스터였다. 

 

<담> 시리즈. 연탄가스로 인한 사망사고가 많았던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작품(좌)과 <담> 시리즈에 변화를 준 작품(우)

 

<태극기> 시리즈

 

 

‘담’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평범하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일상이라는 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에 38년간 재직했다. 성균관 명륜당을 끼고 올라가는 길에서 한옥을 보아왔고, 담과 처마가 눈에 들어왔다. 처마끝은 밖을 내다보는, 지향하는 의미이고, 담이라는 건 담 안에 있는 나와 밖에 있는 너, 즉 우리라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속된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려는 어떤 성스러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중간중간 변화가 있었지만 그 담 작품이 지금까지 연결이 된다. 

 

‘평화의 문’ 작업을 하셨는데. 


나에게 잊지 못할 일 중 하나다. 평화의 문 상징탑은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작업이다. 어느 날 김중업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뵌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날 아셨는지 좀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찾아 뵈니 올림픽공원에 기념 상징탑을 세우는데 천정화를 맡아 달라 하셨다. 감히 선생님 작품에 손을 댈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며칠 생각해보라 하시더라. 한 일주일을 고민하다 한번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평화의 문’ 작업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김중업 선생님께 어떤 생각 갖고 계신지 여쭤봤지만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그러다 남북통일에 대한 의미에 대해 말씀하셨고, 마침 김중업 선생님도 나도 고향이 이북이어서 그 주제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재료 선정은 어떻게 하셨나.


재료 선정이 쉽진 않았다. 날개처럼 생긴 상징탑의 구조와 바람의 움직임 등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세라믹 타일로 하려고 했는데 풍동실험 결과 세라믹 타일은 사용할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단청으로 결정됐다. 천연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은 화공재료를 쓸 수밖에 없었다. 

 

97년도에 보수가 이루어졌는데. 


공사 잘못으로 상징탑의 천정 부분의 그림이 다 벗겨졌다. 과거에 작업했던 1:1 도면 등의 자료가 없다고 하더라.내가 갖고있던 축소본이 있어서 그걸로 다시 1:1 도면을 그렸다. 원화는 현재 소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97년도 채색 보수는 알파포스터칼라에서 아크릴컬러 재료로 작업을 맡았다. 

 

<I Love Korea> 시리즈. 김장값이 올라 힘들어하는 서민들이 김장 걱정을 덜었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작품으로,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백금남 교수의 한국적 이미지를 활용한 포스터 작업. 왼쪽 포스터는 백금남 교수가 IMF 시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작은 돈의 단위인 1원과 미국의 가장 작은 돈의 단위인 1센트를 통해 두개의 자전거 바퀴가 합을 이루듯, 함께 협력하며 살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중국과 활발한 교류 활동을 하셨다. 


올해는 한중디자인교류 30주년이 되는 해다. 93년도 중국으로부터 초대를 받았고 가서 그룹전을 했다. 내가 대학 졸업하는 해에 친구들과 함께 한국현대디자인실험작가협회(KECD)를 결성했는데, 지금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다. 그 협회 회원작품을 가지고 93년 북경을 시작으로 연변, 하얼빈, 연태 등지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첫 중국과의 디자인 교류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 교류하고 있다. 

 

2003년엔 연변대학교에서 1년간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그 이후 중국의 20여 개 대학에 객좌교수로, 명예교수로, 겸직교수로 있으면서 강의를 하고, 특강을 하고, 개인전을 하고, 국제교류전을 하고, 국제공모전 심사를 했다. 

 

<현실과 발언> 시리즈. '현실'에 대한 백금남 교수의 '발언'이 담긴 작품이다. 

 

 

일본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80년대엔 일본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 89년도엔 일본에서 투어 개인전을 가졌다. 동경, 요코하마, 나고야,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 삿포로, 벳부, 고베, 사가 등 곳곳에서 했다. 일본에서만 4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일본 친구들이 자기들도 못해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전시를 하냐며 놀라하더라. 현지의 친구들이 많이 도움을 주었다.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


쉬고 있다. 가끔 답사여행을 다니고, 한 달에 두, 세 번 박물관, 미술관을 찾는다. 일년에 한 두 곳의 국제포스터전, 2~3곳의 국제소형판화전 등에 출품한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백금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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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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