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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대한민국 제1호 필적전문가 구본진 변호사

2024-03-31

글씨는 글의 내용을 넘어 많은 것을 남긴다. 사람의 필체에는 그 사람의 특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필적학은 사람의 필체가 남긴 흔적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심리상태 등을 추론하는 학문이다. 

 

구본진 변호사

 

 

구본진 변호사는 우리나라 제1호 필적전문가다. 사회 영역 내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열정적인 그는 ‘학문이라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풍요롭게 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강하게 지지한다. 시대를 넘나드는 그의 열정과 호기심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양과 서양의 문화 풍경을 아우르며 이어진다. 

 

이러한 열정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그는 필적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과거 검사 시절, 독특한 글씨체로 쓰인 범죄자들의 자술서를 보고 우연하게 필적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구본진 변호사는 이후 독립운동가 및 친일파의 글씨를 수집하면서 본격적으로 필적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2000년부터 24년간 독립운동가 612명, 친일파 241명, 일제 침략자 16명, 유명인들의 글씨 1,500여 장을 수집해오며 사람의 내면과 글씨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대한민국 제1호 필적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관심은 글씨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씨에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고대 유물과 고미술품, 현대 미술품 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집을 해온 그는 여러 분야의 수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한민족과 홍산문화>

 

 

홍산문화는 그의 또 다른 관심분야다. 구본진 변호사는 독립운동가의 친필을 수집하며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연구 과정에서 홍산문화를 알게 된 그는 깊은 연구를 통해 <한민족과 홍산문화>를 출간하기도 했다. 

 

구본진 변호사는 그가 수집해온 다양한 컬렉션 중 독립운동가의 글씨를 가장 아낀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컬렉션이 독립운동가 친필 컬렉션 중 최고의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그가 컬렉션을 수집하는 것은 우리 글씨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수집한 다양한 컬렉션을 사회에 기증, 많은 이들과 나누며 후대에 좋은 글씨를 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Q. 어떻게 필적을 연구하게 됐나.


변호사로 활동하기 전 21년 동안 검사로 일했습니다. 평검사 생활의 대부분을 조직폭력, 마약, 살인 사건을 다루는 강력부에서 보냈지요. 강력사건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술서를 쓰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과정에서 매우 특이한 글씨체를 가진 범죄자들을 종종 보게 되었고, 글씨와 범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글씨를 수집하면서부터입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뉴욕에서 연수를 하면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 기증된 유물들을 보고 저도 수집을 해서 나중에 박물관 등에 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테마가 독립운동가 친필이었고 나중에는 친일파 친필도 함께 모으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친필이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 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차이가 의미하는 것을 고민하고 찾다 보니 글씨체 연구를 하게 되었지요. 

 

국내에는 자료가 없어서 해외 자료를 보면서 연구를 했는데요, 주로 미국, 일본 자료를 보았고 독일, 영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 자료도 보았습니다. 해외 자료들을 보면서 국내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 점검하고 응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어떤 글씨를 쓰는지를 보고 한글에서는 그런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따져보는 식이었습니다. 글씨 분석을 하고 그 사람의 성격이 써 있는 전기나 일대기 등을 보면서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Q. 필적학은 무엇인가.


우선 글씨 분석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동양에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글씨를 연구하는 서론(書論)이 발달하였다면, 서양에서는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글씨를 크기, 모양, 간격, 기울기 등으로 분석하는 필적학(筆跡學, Graphology, Graphologie)이 발달했습니다. 서양에서 필적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대부분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입니다. 

 

필적학이란 어떤 사람의 필적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필적학은 글씨를 쓸 때 머리에서 손과 팔의 근육에 메시지를 전달해서 선, 굴곡, 점 등을 만들기 때문에 필적이 내적 세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필적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글씨를 분석하여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글씨가 놀라울 정도로 가깝다고 한 것이 최초의 필적학적 접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체계적인 필적학은 개인의 글씨가 탄생하기까지 생겨나지 못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의 장식적 글씨가 쇠퇴한 이후에서야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622년 이탈리아의 의학자 카밀로 발디(Camillo Baldi)는 필적이 심리, 즉 사람의 성격과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냈습니다. 1875년 프랑스의 장 히폴리토 미숑(Jean-Hippolyte Michon)은 ‘필적학’이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했으며, 장 크레피유 자맹(Jules Crépieux-Jamin)에 의해서 필적학이 크게 발전되었습니다. 독일의 루트비히 클라게스(Ludwig Klages) 박사는 ‘필적은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여 직관적, 경험적 방법에 의해 필적을 추적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필적학자 빌헬름 프레이어(Wilhelm Preyer)는 1895년 그의 저서 <필적심리(Zur Psychologie des Schreibens)>에서 글씨를 쓰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대뇌이므로 글씨를 ‘뇌의 흔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도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이태리, 이스라엘 등의 필적학자들이 필적학을 발전시켰고, 위 국가들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많은 필적학 서적이 출판되었습니다. 독일의 필적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울쥬라 아베랄르멘(Ursula-Avé-Lallemant)이 필적 분석 수단으로 개발한 ‘별과 파도 검사(star wave test)’는 취학 전 유아의 발달기능검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위스, 이태리 등의 대학에서는 필적학 강의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필적과 성격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믿었고,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필적 분석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적과 성격의 연관성을 믿은 사람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괴테, 셰익스피어. 찰스 다윈, 공자, 주자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김구, <독립만세>

 

 

Q. 사람의 내면과 글씨는 어떤 연관이 있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이 지고 힘찬 것이 많습니다.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속도가 느리고 규칙성이 두드러집니다. 또 꾸밈이 별로 없고 필선이 깨끗합니다. 반면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규칙성은 떨어지고 꾸밈이 심하며 필선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친일파는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입니다. 

 

필적학 이론으로 분석하면 독립운동가는 보수적이고 바르며 조심스럽고 사려가 깊으며 의지가 강합니다. 자신에게 엄격하며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고 행동이 일관되며 신뢰할 수 있고 마음이 착하며 순수하고 겉과 속이 같습니다. 친일파는 용기와 사회성이 있고 외향적이며 말이 많고 표현하는 것을 즐기며 사려 깊지 못하고 의지가 약합니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고 남에게도 비판적이지 않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행동이 일관되지 않으며 변덕스럽고 기회주의적입니다. 마음이 착하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지요. 어떤 경우는 독창적이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심리를 보이기도 합니다. 

 

독립운동가는 올곧고 자신에게 엄격하며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친일파는 의지가 약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하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하여 일신의 안일을 택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독립운동가나 친일파 모두 본인의 인격 때문에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Q. 가장 인상깊었던 글씨가 있다면.


글씨는 미술품과 달리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글씨들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유일하게 소장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입니다. 

 

손병희 선생의 글씨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손병희 선생의 글씨입니다. 이 글씨는 위창 오세창의 집안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워낙 독특한 글씨여서 뭐라고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척 궁금해하다가 10년 정도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조대환 전 민정수석님의 도움으로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龍過江 必風有 信鳳人: 용이 강을 건너면 반드시 바람이 있고 걸출한 인물도 반드시 나온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Q.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해 정보를 기록하면서 글씨를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중요성도 간과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손글씨에는 크게 두 가지의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 소통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 수양입니다.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기능은 많이 약해졌지만 인격 수양의 수단으로서는 아직 유효합니다.  

 

흔히들 서예를 하는 이유를 '인격 수양'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곧 글씨 연습을 통해서 내면을 바꾼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씨 연습을 통해 내면을 바꾼다는 생각은 동양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석봉이 글씨를 연습한 이야기는 유명한데, 김상숙 등 조선의 선비들이 그토록 글씨 연습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 이유는 글씨를 멋지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링컨 대통령도 어릴 때 글씨 연습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링컨은 벤자민 플랭클린과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글씨를 따라 쓰는 연습을 했습니다. 실제로 링컨의 글씨와 프랭클린, 워싱턴의 글씨가 비슷합니다.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부자의 글씨>

 

 

Q. 손글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면.


손글씨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연습할 수 있으며 효과가 좋은 방법입니다. 인격 수양을 하는데 독서, 기도, 명상, 운동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손글씨 만큼 효율적인 방법도 드뭅니다. 이처럼 효율성 높은 손글씨 연습이 사라져버리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외국의 필적학책에서는 글씨체를 바꿔서 삶이 달라진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도 많은 연구를 했고 국내에도 연구 논문들이 있습니다. 김완태가 쓴 “서예 교육이 중학교 학생의 감성 지능에 미치는 영향”(2003)이라는 논문에서 중학교 1학년생 24명을 대상으로 5개월에 걸쳐 서예 교육을 하였더니 자기 동기부여, 자기감성관리에서 두드러지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권은경이 쓴 “서예학습과 아동 주의집중력의 상관관계 연구”(2008)에서는 초등학교 3년생 48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10주의 서예 교육 결과 주의 집중력이 향상되었고, 선택적 주의력, 자기통제력, 지속적 주의력 향상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Q. 홍산문화 옥기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요하무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년경부터 기원전 3000년경까지 현재 내몽고 동남부와 요녕성 서부에 분포했던 문화입니다. 20세기 초에 처음 알려졌고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었습니다. 그 동안 중국학자들은, 중국 문명의 시초는 황하문명으로서 섬서성(陝西省)과 하남성(河南省)을 중심으로 한 중원지역에서 발전해서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보다 북쪽과 남쪽에 더 빠르고 발전된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심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중국의 ‘동북’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부’ 지역과 끊임없이 분리되어 있었고 그 결과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만리장성 외곽에서 발견된 홍산문화를 비롯한 요하문명은 황하문명과는 전혀 이질적인데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는 데다가 문화적으로도 더 발전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대략 기원전 4500년경-기원전 3000년경으로 봅니다. 홍산문화는 대규모의 돌무덤, 다양하고 독특한 토기, 수준 높은 옥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아이 한국인>

 

 

Q.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독립운동가 친필을 수집하다가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등이 심혈을 기울였던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글씨 분석을 통해 한민족이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를 추적한 결과물이 <어린아이 한국인>(김영사, 2015)입니다. 연구 과정에서 홍산문화를 알게 되어 연구했고, 2020년에 <한민족과 홍산문화>(도서출판 선)를 냈습니다. 그후 더 깊은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을 영국이나 미국에서 출판하려고 준비중입니다. 

 

Q. 컬렉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여러 분야를 수집했습니다. 그러다가 기증을 할 만한 컬렉션을 생각했고 그것이 곧 독립운동가 글씨였습니다. 제가 독립운동가 글씨를 테마로 잡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우선시한 것이 내 컬렉션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와 아닌 것의 차이는 크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제 컬렉션이 독립운동가 친필 컬렉션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수집한 자료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어서 일반에게 공개하는 등 처음부터 목적했던 대로 사회에 돌려줄 것입니다. 

 

아울러 연구를 더 할 것입니다. 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한글의 발명은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큰 혁명입니다. 한글이 한민족에게 미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게 큽니다. 한글의 조형에 한민족의 감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민족이 한글을 상용한 것이 얼마 안 됩니다. 

 

특히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남성 지식인들이 한글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후 얼마 안 지나서 손글씨가 사라졌고 그래서 한글로 된 좋은 글씨가 매우 드뭅니다. 지금 세대들은 한글을 써야 하는데 좋은 모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글씨체를 찾아내서 후세에 전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구본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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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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