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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디자인으로 놀기

2011-06-14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만화는 때론 어른들에게도 많은 감정을 선사한다.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 세상을 경험하면서 이 세상이 동화에서 보았던 따뜻하고 재미난 곳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수많은 어른들. 싸늘하고 척박한 사회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그들은 동화나 만화에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를 통해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현실화될 수 없음을 알지만 다시 그 안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것. 유머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엉뚱하지만 재치 있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이 시대 수많은 어른들의 건조한 삶에 수분을 공급하는 아티스트가 있으니, 이름부터 재미난 ‘기미노’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GIMINO

캐릭터 아티스트 ‘기미노’. 그의 본명은 김인호다. ‘gimino’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명함 속 'gimino'라는 글자 앞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design play’라고 소개하고 있다. 디자인 플레이, 다시 말하면 디자인을 가지고 논다는 뜻인데, 과연 ‘기미노’는 디자인을 어떠한 방식으로 play할까.


그는 캐릭터에 여러 이야기를 담는다. 어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내용을 한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이 모두 담겨있다. 사랑과 미움, 기쁨, 질투, 분노, 아픔, 나눔 등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들을 캐릭터를 통해 풀어낸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디자인된 그의 캐릭터들은 단순하지만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으로 우리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는다. “캐릭터를 디자인한다고 해서 단순히 캐릭터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스토리를 함께 만듭니다. 하나의 캐릭터가 탄생하면 그 캐릭터가 펼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시리즈의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드라마가 스토리를 이어가듯이 말이죠.”


그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단어 하나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로 간략하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그의 그림은 충분히 감성을 전달한다. “집중, 인내, 기다림, 집착, 결단. 이러한 단어 하나로 풀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이 단어와 그림들로 이루어집니다. 저의 생각 자체도 그렇고 작업의 컨셉도 그렇고, 간략하게 축소시키고 덜어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간략하지만 캐릭터가 전하는 내용은 매우 현실적이다.

커다란 곰이 아이의 막대사탕을 잡아채는 'SNATCH', 다시 빼앗아 달아나는 꼬마와 'AMPLE', 거꾸로 매달린 박쥐를 보고 관심을 갖는 아이의 'INTEREST', 이어지는 박쥐의 무관심 'APATHY', 사탕에 관심을 갖는 원숭이의 '흥미'와 사탕 주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거절’, ‘실수’, ‘도움’, ‘선물’ 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빼앗기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거절당하고, 실수하지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와 꼭 닮았다.


그가 만든 캐릭터에는 'Robot school', 'The Square Zoo', 'Tomino' 등이 있다. 전기 부속품들을 이용해 손톱만큼 작은 캐릭터들을 만든 그는 'Robot school'를 꾸몄다. 카페 공간을 활용해 구석구석 다양한 위치에 캐릭터를 설치한 이 작업은 짜인 룰 속에서 마치 로봇처럼 지내는 청소년들의 생활을 풍자한 내용이다. 설치 작업이었던 'Robot school'말고도 새끼손톱보다 작은 부품들을 조합시킨 악세사리를 제작, 선보이기도 했다.


네모난 얼굴의 동물들이 사는 'The Square Zoo'에는 원숭이, 쥐, 코끼리, 양 등 온갖 동물들이 다 있다. 심지어 박쥐와 용도 있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단순한 사각 틀에 오밀조밀 눈, 코, 입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디자인을 통해 각 동물들의 특성을 담아냈다. 정사각형의 틀을 깬 동물은 한 마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비슷해 보이는 동물도 없다. 제각각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은 사각 동물들은 하나같이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자신들을 구경하러 온 인간들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사랑과 우정을 키워나간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동화책’처럼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


'Tomino'는 토끼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미노’를 닮은 토끼다. 그래서 이름도 ‘토미노’다. ‘토미노’에는 스토리가 있다. 당근을 가장 아끼는 토미노가 펼치는 당근과의 이야기. 토미노와 당근은 이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풀어낸다. “‘토미노’는 객관적이려고 하지만 주관적인 우리의 모습이고, ‘당근’은 ‘토미노’가 가장 아끼는 것이자 우리가 가장 아끼는, 그래서 때론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토미노가 해석해나가는 우리의 정서들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가장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들이 항상 공존하는 상생의 순간인 것이죠.” 당근을 향한 애정과 당근을 지키기 위한 노력, 과분한 애정이 만든 증오 등의 감정 등을 공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시계나 열쇠고리, 버튼 등 아트상품으로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다. ‘스퀘어 주’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물들로 디자인된 아트상품은 국내 아트상품마켓의 대표회사인 한국아트체인과의 계약을 통해 제작, 판매되고 있으며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VIP 고객을 위한 아트상품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개인전, 체험전 등 여러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의 역량을 쌓은 그는 현재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창작지원센터에 입주해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노는 방식(design paly)’을 연구 중이다. 디자인을 좀 더 즐겁게 만드는 일로, 스스로가 즐겁게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좀 더 즐거운 것이라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특수한 사람들이 누리는 그 무엇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형태를 찾아 그 범위를 좀 더 넓히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어떻게 하면 디자인이 재미난 공간이나 놀이와 연관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죠.”


그래서 그는 요즘 캐릭터 디자인 말고도 또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 손바닥의 반도 채 되지 않는 크기의 잡지 'JOYN'을 만드는 일이다. “개개인의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로 취지는 'I understand'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이해하는 작업이죠. 표지모델이 주인공이 되고 다음 달이 되면 표지모델을 한 주인공이 추천하는 누군가가 새로운 주인공이 됩니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문화, 취향 등을 담아내는 것이죠. 특정한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누구나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약 5명 정도의 주인공을 뽑아 만들 생각입니다. 이 시대에 분명히 존재하는 온라인이 가지지 못한 감성, 그것을 공유하고 싶어요.”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거다. 누구나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 소외시키고 소외받는 문화가 아닌 누구나의 취향이 모두 존중되는 놀이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위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서점이 아닌 커뮤니티 공간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섯 권 한 세트에 천원, 이 정도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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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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