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1
구두하면 떠오르는 도로시의 빨간 구두에는 구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빨간 구두를 신으면 왠지 동화 속 주인공 도로시처럼 앙증맞은 아가씨가 될 것 같고, 빨간 구두를 신으면 신기한 것이 많은 환상의 세계를 경험할 것만 같은 기분은 빨간 구두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수많은 여성들이 어여쁜 구두를 찾아 나서는 것은 어쩌면 이런 구두를 찾기 위함이 아닐까. 구두를 신는 발 뿐 아니라 마음까지 즐겁게 해주는 ‘겸비’는 마치 도로시의 빨간 구두 같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디자이너 이겸비
‘겸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미술 전시장에서였다. 자동차나 인형 등으로 만들어진 굽과 과감한 컬러도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라면봉지로 구두를 감싸고 여러 켤레의 구두를 매달아 놓는 등의 설치작품들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 구두의 형태로 대형 욕조를 만들어 전시장에 설치하고,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슈즈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신발장을 최초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핑크 빛으로 장식된 그녀의 작품은 화제가 되었고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가 구두를 통해 표현해 낸 것은 여성의 아름답고 화려한 것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런 그가 디자인한 슈즈는 어떤 모습일까. 다양한 실험적 디자인을 굵직굵직한 여러 전시에서 선보여온 그는 판매를 위한 디자인에 있어서도 그 기발함을 열어둔다. “디자이너 브랜드인데 액세서리 브랜드를 갖고 있었던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컬렉션 슈즈를 담당했어요. 컬렉션 슈즈라는 것은 판매를 위한 점잖은 디자인과는 다르게 제품마다 임팩트가 있어야 해요. 그런 슈즈들을 일반 판매용 슈즈와 함께 디자인 했었어요. 그 이후 직장은 아트마케팅을 했던 곳으로 그곳에서 다양한 예술적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하면서도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고 전시 참가를 위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위한 슈즈와 판매를 위한 슈즈를 병행하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판매를 위한 슈즈를 디자인할 땐 가장 기본적으로 스타일이 있으면서도 유행에 치우치지 않는, 활동적인 여성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그가 디자인한 슈즈들에서는 전시장에서 만났던 독특함과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소화가 가능한 심플함이 동시에 발견된다. 단순한 디자인인 것 같지만 ‘겸비’만의 라인이 있고 화려한 것 같지만 부담을 뺀 ‘겸비’만의 색깔이 있다. “어떻게 해야 가장 스피디하면서도 편하게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는지를 기본으로 둡니다. 흔치 않은 디자인이 최고라 생각하진 않아요. 베스트셀러가 결국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임팩트가 있으면서도 유난스럽지 않은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죠.”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그는 자주 머릿속을 샤워한다. “다양한 영감들이 지나갈 수 있게 평소엔 머리를 많이 비워놓는 편입니다. 장르에 관계없이 자극이 될 만한 영화나 공연, 전시 등은 꼭 보죠. 특히 소설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용에 빠져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죠. 실제로 공연을 보고 등장인물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제품도 있습니다.”
이겸비 디자이너는 책을 통해서도 독자들과 만났다.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7년이 되었을 때 슈즈 디자이너의, 슈즈 디자이너에 의한, 슈즈 디자이너를 위한 ‘슈즈’라는 책을 펴냈고 2년 전에는 ‘슈즈홀릭’에서 그녀의 일러스트를 선보인 바 있다.
한 사람의 분위기를 완전히 색다르게 꾸며주는 구두. 이 구두에 거는 여성들의 기대는 분명 존재한다. 화려하면서도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욕심 많은 여자들의 심리,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그 심리를 순수 작업을 통해, 슈즈 디자인을 통해 해소해내는 그는 그의 본명처럼 이 두 가지 모두를 겸비하고 있다.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라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뜻이 좋다하여 요즘엔 겸손한 왕비라는 의미로 한자를 바꿔 쓰고 있지만요.” 그의 이름의 의미처럼 그는 신발을 신는 사람을 생각하는 지혜와 여성들의 마음 깊이 내재된 욕망을 드러내는 용기를 겸비한 디자이너다.
슈즈클래스를 통해서 슈즈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제공시켜주기도 하는 그는 슈즈를 통해 소통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슈즈가 많아도 마르고 닳도록 신는 슈즈는 몇 개 안됩니다. 편하거나 단순하지만 여러 옷에 소화되는 컬러감을 지닌 슈즈가 그렇죠. 계속 신게 되는 슈즈처럼, 쉽게 신을 수 있고 신어서 발이 예뻐 보이는 슈즈를 만드는 것이 여러 분들과 제가 소통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그런 감정과 경험이 저에겐 무척 소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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